다시는 공부 안 해!(대하6:1~11)


“다시는 기도 안 할래요!”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데요 뭐!“


일대일을 하는 새 신자에게서 온

투정 섞인 문자입니다.


나 또한 하나님의 응답을 내심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는데 결과가 “NO"인 것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새 신자였기에

‘이번에는 제발‘ 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것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공부를 안했고, 그래서 시험결과가 나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시험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면

공부하는 방법을 검토해 봐야 합니다.

“다시는 공부 안 해!’‘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안 했을 때는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논 할 여지가 없지만

기도를 했는데도 들어주시지 않았다면

기도하는 방법을 점검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는 기도 안 해!” 라고 하는 것은

시험결과가 안 좋다고 다시는 시험을

안본다고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지요.


기도가 응답되지 않음으로 인해

내 기도의 방향과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내 유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살펴보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놀랍게도 이 말이 먹혔고

그들은 다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성전을 짓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다윗이 지었을 것입니다.


더 간절히 원한 사람이 다윗이었기에

그가 지었으면 더 잘 지었을 것입니다.


내가 못 짓는다고 슬퍼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준비하는 사람이 없이는 성전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난 때에는

꼭 미리부터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전을 내 생각대로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지어져야 합니다.


기도가 꼭 응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했는지가 먼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새 신자가 시험 들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시험 들것이 예상 되더라도

또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찾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진짜는 내 생각과 경험으로는 모르지만

말씀을 들이대 보면 알게 됩니다.

말씀은 진짜이니까 말입니다.


오 주님, 오늘하루도

말씀에 반응하는 진짜를 만나게 하시며

말씀을 들이대는 진짜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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