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자가를 몰라!”(빌3:17~21)



그리스도의 원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따로 떼어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따로 떼어놓지 않듯이

그리스도인과 고난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고통을 당해서는 안돼“ 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십자가를 몰라” 라는 말과 같습니다.


십자가를 수용하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많은 이들이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지만

고난으로 인한 구원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에게 달려있도록

허락하셨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된다면

내 고난은 그리스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와 관계없기에

내 고난이 내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는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19)


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고난을 위하여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면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 수 없으며

구원을 모르니 하늘의 일이 아닌

땅의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본 받은 바울을

본 받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을 본받는 방법은

바울을 본 받은 리더를 본 받는 것입니다.


본 받을 리더가 있습니까?

그를 얼마나 자주 만납니까?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봅니까?


기쁨의 깊은 의미는 고난 속에 숨어있지

행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난은 소망의 크기를 더 크게 해 주고

소망은 고난의 크기를 더 작게 해 주는 것을

그 리더와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그런 리더를 만나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내가 그런 리더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히 전해지기를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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