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대장(약2:14~26)
죽은 것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천 년 전에 죽으신 예수님의 주장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예수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몇 천 년 전에 죽으신 부처님의
주장을 유효하게 만들기 위해
불교에 윤회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은
더 이상 그의 모든 부분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 것은 있는 것이지만
죽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니까
마치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어 있고
행함 없는 믿음도 있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자체가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동사이니까 말입니다.
목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듯이
믿음과 행함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단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듯이
믿음에서 행함으로 연결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믿음이 가슴으로 잘 내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은
믿음이 가슴으로 내려가는 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우리가 울며 기도해야 할 것은
가슴으로 내려가는 믿음이
지체되지 않고 정체되지 않도록
간절히 요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을 악한 것으로 알고
또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구원을 위한 나의 믿음 행함은
그들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분리와 분별로 인한 장벽 조성이 아니라
나도 너와 똑 같고
나도 예전에 너처럼 그렇게 살았는데
더 좋은 삶이 있다는 것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으로
알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믿음과 행함의 조화로운 모습입니다.
믿음 속에 행함이 갇혀 있지 않게 하시고
행함으로 믿음이 자유함을 얻으며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강력히 증거하는
하늘의 행동대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입니다.
(201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