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아주 아름다워 보이십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시고 인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은 이사야64장을 읽음으로 시작하기 원합니다.

이사야64:1-1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음 같게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라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존귀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오늘 사역하여 주시기를 우리가 간구합니다.

우리에게 계시와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주예수님, 우리 가운데서 주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하옵소서.

이 모든 것을 주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이사야64장에 읽은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심방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기도문이예요.

그리고 부흥을 위한 그러한 기도문이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놓여 있는 상태 때문에 지금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연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모든 상황이 아주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그들의 영적인 상태로부터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들의 조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행하신 위대한 역사에 대해서 그들이 말하였고, 그런데 그들이 더 이상 그러한 역사를 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이전 세대에 바로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내려오셨던 그 과거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 때문에 그들의 상황이 절대로 그대로 있지 않고 변화되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여기서 인정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체험했던 주님의 임재를 더 이상 그들은 체험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님앞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 하늘을 가르고 다시 강림하소서. 바로 그들이 죄 가운데 지금 완전히 막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들을 완전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부르짖고 있어요.

 

주님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영원토록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계속 잡고 있지 마옵소서. 그리고 너무 분노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이제는 주님의 자비로 주의 백성들을 내려다 보시옵소서. 그래서 그들이 여기서 아주 오랫동안 기도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왜냐면 그들이 기도문 가운데, 주님 이러한 일을 영원토록 이렇게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까’하고 그들이 말하고 있기때문이죠. 우리가 이렇게 주의 이름을 계속적으로 부르는데도 주님이 거기에 응답하지 않으시렵니까‘하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 부르짖는데 왜 주님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20:38)

 

어제 우리가 집회를 마감할 때, 이런 비슷한 상황을 가지고 마감을 했죠.

왜 그렇게 마음에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주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심을 다해서 주님 앞에 부흥을 달라고 주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는데 왜 그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마감을 했어요.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그 일에 행하여 주십사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이 지연하고 응답을 하지 않으실까요?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서 오후시간에는 함께 연구해보고 깊이 분석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이 주제를 가지고 여기에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있어요.

왜, 사람들이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까요?

왜, 사람들이 하나님 우리를 방문해주십사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르짖고 계속적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할까요?

 

거기에 대한 아주 단순한 대답은, 그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만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 했던 하나님의 그 체험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확신하는 것은 지금 체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성경을 볼 때 그들이 현재 체험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님이 행하신다는 그 증거가 성경에 가득차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러한 불만족. 사람들을 잡고 있는 불만족이 물론 사람마다 다 개인차가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그저 불만족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계속 말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 상황에 대해서 그만큰 마음이 상해 있지는 않아요. 그들이 그것에 대해서 말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가볍게 말을 해요.

 

지금 현재 상황이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챦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불만족한 상황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이 멀어 있어서 현재 상태에 그저 만족하고 있어요. 그들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인해서 그냥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아니면 그들이 아주 익숙한 전통으로 인해서 그냥 만족하고 있어요. 또한 그 시점에서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권위나 권능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부흥을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럴때마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이러한 두 부류 가운데 항상 어떠한 갈등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또 다른 한 부류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족하고 그것에 대해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있어요. 그들은 지금 가는 상황이 잘 되지 않고 또한 그들이 반드시 체험해야 될 마땅한 그러한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점점 더 불만족이 커지는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할뿐만 아니라 또한 기도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하고 말씀을 막 상고해요.

물론 이런 기도하는 사람중에도 그들의 갈급함에는 정도의 차이가 다 있지요? 그들의 갈급함이 더 절망적일수록 그들은 더 깊게 하나님을 말씀을 찾고 추구하죠.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잠시 분석해 보겠어요.

 

우리가 불만족한다는 그 사실 그 자체는 우리에게 몇가지를 말해주죠. 그중에 한가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동행하는 삶에 뭔가 놓치고 있는 요점이 있다는 사실이예요. 뭔가 우리가 놓치고 있고 뭔가 부족한게 있다는 사실이예요. 그리고 그것이 또 말해주는 바는, 뭔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예요. 우리가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충분하지 않다는 그 사실 자체가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를 말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또한 그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가 보긴 보지만 보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기도 해요. 우리가 봅니다. 그러나 보긴 보아도 뭔가 우리에게 불만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거에요.

 

우리가 이제껏 말해 왔던 이 말들이 일반적인 지식을 말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지식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에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이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를 우리가 깊이 내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바로 내면적으로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낮추는 그 길을 시작하는 것이에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기도를 하고 있어요.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신의 노력을 가지고 그렇게 주님 앞에 기도하고 추구하고 있어요. 그의 동기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29:46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도 보기 원하는 사람이죠.

 

그러나 우리가 이제껏 말해왔던 사실을 우리가 깊이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힘으로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부흥이 필요하다는 그 필요를 보는 것 자체가 뭔가 우리가 부족한 것이 있고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해야지 되요. 뭔가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뭔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지 되요. 우리가 하는 그 일중에 우리가 뭔가 빠트린 것이 있다,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 부흥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다니면서 부흥에 대해서 사람들을 막 가르쳐요. 그래서 부흥에 대해서 뭔가 전문가인것처럼 그들이 행동해요. ( 31:38) 자신이 체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흥에 대해서는 전문가인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도 그러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그렇게 많이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거에 대한 열매나 부흥을 보지 못하는 그런 사실을 입증하죠

 

그래서 항상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들이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바로 낮춘다는,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다른 관점으로 이것을 한번 바라보겠어요.

누구든지 간에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조금전에 말했던 이 모든 사실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주 좁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아주 좁은 시각으로부터 이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그 좁은 시각으로부터 시작을 해요. 시각이 아주 좁은 상태로부터 그 사람들이 시작을 해요.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좁은 시각중에는 물론 한두가지의 진리는 그들이 붙들고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붙들고 그들이 막~추구해요. 그래서 그들이 전심을 다해서 진심으로 주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33:47)

그런데 어떨때는 그들이 잡고 있는 그 진리때문에 어떤 결과를 그들이 볼 수도 있어요. 어떤 열매를 그들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시점에 이르르면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 그 시점이 이르른거에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주님 앞에 부르짖고 또 기대해요. 그리고는 우리 마음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기다린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그런 시간이 좀 흐른 다음에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피곤해지죠. 그리고 그들이 그냥 멈춰버려요.

 

제가 우간다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데, 그 우간다의 부르심에 대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을 때를 기억해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치유하기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일으켜 세워서 교회를 덮고 있는 무겁게 짓누르는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제거하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기 시작하셨어요.

 

주님께서 약속하기 시작하셨어요. 나의 성령을 교회에게 다시 부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 온나라에 부흥을 줄 것이다‘하고 주님께서 약속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모든 수치와 잘못된 그 영성들을 다 제거해 줄 것이라는 그런 약속을 해 주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주님께서 또한 이 나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큰 간증거리를 내가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네가 전역으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서 일으켜 세우고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라‘고 우리에게 명령을 하셨어요. 그때는 우리 모두가 아주 젊었어요. 그리고 경험이 없었어요. 우리의 무리도 아주 적은 무리였고 우리는 별로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좀 더 크고 유명한 사람들에게 가서 이것을 구하지 않는가!

그들은 이미 높은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자들이고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권위의 자들인데, 그래서 그들이 아주 쉽게 아주 많은 사람들을 따르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가서 해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 나라에 이 모든 것을 오버나이즈?하는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한테 하루는 제가 갔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셨는지 그 모든 것을 그에게 말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행할지 알지 못합니다. 라고 말했어요.(37:36) 어느곳으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좀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시겠습니까,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이전에도 일어났던 부흥에 대해서도 참여했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아시니까, ‘도와달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아 내가 기도해보겠다’ 그랬어요.

그리고는 나중에 돌아와서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권면을 그분이 하셨어요.

이 나라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모든 아버지들의 이름을 다 적어서 리스트를 작성해라.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을 너가 가서 다 만나라. 그리고 너가 나에게 말해줬던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말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어떤 마음을 주셨는지에 대해서 그들에게 다 말해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축복해 달라고, 그들에게 구해라. 뭔가 하기를 그들에게 요청하지 말고 너를 축복해 달라고 그냥 구해라. 그리고 항상 그들에게 돌아가서 권면을 구할 수 있는 그런 문을 열어달라고 그렇게 요청을 해라. 그래서 그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과 대화를 마친 다음에 하나님께서 너에게 요구하는 그 일을 하기 시작해라. 그런데 내가 너에게 장담하건데 그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축복해 줄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늘에서 기록할 것이다. 그들이 너에게 바른 교제의 문을 줬다는 사실을. 그리고 난 다음에 또 다른 말을 했어요.

 

그리고 내가 또 너에게 장담하는데 너가 그렇게 행하기 시작하면, 너의 하는 일에 추진력이 붙기 시작하면 그 말했던 많은 사람들이 너를 대적하기 시작할 것이다. 너를 대적하고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반대할 것이다. 설교도 너를 대적하는 설교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시작할 때 너가 먼저 순복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그들이 너에게 축복했기 때문에 그들의 대적이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가 하는 역사, 사역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주 흥미롭게도 그중에 한분이 나를 대적하는 분이 되었어요. 라디오에까지 나가서 우리를 대적하는 설교를 했어요. 라디오프로그램을 우리를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했어요. 그에게는 신학교도 하고 있는데 그 신학교 학생들을 전 나라로 가면서 우리를 대적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잠시동안만 지속된 일이었어요. 5년내지 6년동안 진행됐던 일이었죠.. 그런데 그 이후에는 그가 거기에서 완전히 돌이켜서 완전한 후원자가 되었어요. 현재는 그분이 우리나라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에 완전한 후원자가 되었어요.

(42:17)

제가 그 리스트에 있는 모든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 대개 아주 흥미로웠던 것은 그중에 한분도 제가 하려던 사역에 반대를 하거나, 제가 받은 바 말씀에 반대한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부흥에 대해서 응답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간증을 나누어 주었어요.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피곤해졌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 일을 중단했다는 것을 이야기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너무나도 많은 정치적인 일들이 있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정치때문에도 피곤해졌다.(43:37)

 

그래서 그 리스트에 모든 사람들이 그 일들 때문에 피곤해졌다는 것을 고백했어요. 내가 이전에 여러분께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시작할때는 모두가 아주 좁은 관점,시각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어요. 왜 그렇습니까! 왜 좁은 것일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런 블라인드 스팟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절대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게 아니죠. 왜냐면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런것이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불만족을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마음이 아주 불편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원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이러한 일 때문에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피곤해지고 그들이 하는 그런 사역을 중단할 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계속적으로 주님을 찾고 주님께 질문을 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 모든 일에 행했습니다.

 

왜 그런데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진심으로 전심을 다해서 이 질문을 주님께 할 때 아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지고그것을 주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향해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른 방법으로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즉각적인 우리의 반응은 “아닙니다”에요. 아니에요, 그게 사실일 리가 없습니다. 왜 이것이 사실일 수가 없습니다‘라는 반응이 왜 우리에게 있을까요?

 

첫 번째는 블라인드 스팟,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하나님께서 옳지 않다고 말씀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부흥의 역사를 가서 다시 한번 살펴보시면 그 부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다~ 동일한 시점에 이르러 씨름했던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시점에 모든 사람들이 이르렀고 ‘내가 여기를 결코 넘어갈 수가 없다’라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어떨때는 이 모든 일이 외면적으로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그러한 상황 때문에 일수도 있고 세상이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내가 이제껏 행해왔던 일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데.. 그리고 내가 가르침을 받능 이 교리가 뭐가 잘못되었는가? 내가 믿는 모든 것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일 수가 없다.

 

그리고 어쩔때에는 그 사람들이 그 시점에 이르러서 거기서 그냥 멈춰버려요. 그리고 그들이 ‘ 아! 나는 더 이상 이것을 할 수 없다.’그래요. 그리고는 뒤돌아 서버려요.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요. 주님과 논쟁을 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세요.

이사야서 43장에 보면, 하나님이 ‘오라’ 그랬어요. 우리가 함께 논쟁을 하자‘ 그랬어요. 그리고 나에게 와서 나에게 상기시켜 달라’ 그랬어요. 그리고 니가 거기서 용서 받을 수 있도록 너의 케이스를 가지고 내게 나오라. 주님이 말씀하세요. 니가 너의 케이스를 가지고 와서 나와 함께 논쟁을 하자, 그러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세요.(49:37)

 

여러분 욥도 기억하시죠. 그 욥은 아주 의로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시험을 받는 중간에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가 불평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주님과 논쟁하기 시작했어요.(50:00)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논쟁에 응답하셨어요. 주님께서 응답을 하셨을 때, 욥이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지적해 주셨어요.

하나님이 욥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실제적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을 때, 니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셨어요. 그래 니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옳지 않은 것들이 있다’라고 지적하셨어요.

너의 허리를 조이고 내가 하는 질문에 니가 응답해라‘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니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나한테 와서 말해라. 이 세상의 기초가 어디있는지 나한테 말해라 . 내가 우박을 어디에 쌓아 두는지 말해라, 니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바다를 향해서 책망해서 그것이 나가도록 해라. 그럴 때 내가 너를 향해 경배하겠다. 내 질문에 응답해라’ 그랬어요.

 

그랬을 때 욥이 주님 앞에 자신을 낮췄어요. 주님! 내가 주님 앞에 너무나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계속해서 ‘나한테 와서 말해라, 말해라 ’ 그랬어요. 그리고 더 많은 질문을 욥에게 했어요. 그런데 겸손함 가운데 욥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순복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어요.

 

그래서 이것이 바로 부흥에 대한, 모든 부흥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에요. 모든 부흥사들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깨달음을 어떻게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는지 그런 변화 과정을 말해 주는 것이에요. 모든 부흥사들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에요.

 

왜냐면 그 길만이 하나님이 이 불만족스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이것을 통과시켜서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는 상황으로 바꾸실 수 있는 오직 한가지 길이고 한가지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이 상황 가운데 주님 앞에 우리가 완전히 순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진하는 것을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우리가 기도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어요. 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가지 보기를 드리겠어요.

여러분이 만약에 사도행전을 가서 보면 사도행전 10장입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 10장에 가서 보면 고넬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백부장 고넬료. 그는 이방인이었어요. 그는 하나님의 방문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베드로는 이미 다른 사도들, 제자들과 함께 교회 성장을 체험하고 있는 과정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파를 주시기 원했어요. 그들이 이전에 체험했던 것보다 더 큰 돌파를 주시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깨달음이 한계를 하나님께서 다루시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지금 기도하고 금식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자기에 부정한 짐승들이 있는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이 짐승들을 잡아 먹어라. 그래서 베드로가 ‘아니에요’ 라고 했어요. 제가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왜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학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깨달음은 내가 이러한 것들을 먹으면 안된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 내가 정하다고 한 것을 너가 부정하다고 하지 말아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리고 또 동일한 일이 일어났어요. 베드로는 ‘아닙니다’ 그랬어요. 내가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가 그렇게 할 것이다.‘했어요. 그리고 또 다시 세 번째 일어났어요. 그런데 아직도 베드로는 ’아닙니다‘ . 모든 사람들이 동일해요.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향한 돌파를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모든 이방인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기를 원하시는데 그런데 그들의 생각가운데 이미 조성되어 있는 담을 헐어야만 되었어요. 베드로는 아주 진솔한 사람이었어요. 베드로는 자기가 확신했어요. 자기가 옳다는 것에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가 옳지 않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나는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그 체험이 있고 난 다음에, 누가 방문객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가 내려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어요. ‘ 같이 가자고 하면 따라가라’ 그랬어요.

그래서 그 방문자를 따라 갔어요. 그를 따라 갔더니 이방인의 집에 이르게 되었어요.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게 된거에요. 부정한 사람인데.

“ 왜 나를 부르셨습니까”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고 그리고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고, 그리고 가서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셨는지에 대해서,

그래서 베드로가 말했어요.

‘아 이제 내가 알겠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시구나! 그래서 모든 나라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시는구나!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 말뜻은 베드로의 마음 가운데 깊이 박혀 있던 그 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거에요. “아 이제는 내가 알겠다” 그래서 그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설교하기 시작했어요. 그가 설교를 할 때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했어요. 그리고 베드로가 “ 오 마이 갓” 이들이 세례받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으리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동일한 영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여러분과 저는 다 이방인이죠. 베드로가 말하는 뜻을 우리가 다 지금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세례입니까? 세례의 의미는 과거에 대해서 죽는 것이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에요. 그리고 교회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로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모든 신자들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동등해지는 것이에요. 우리가 동일한 아버지를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동일한 영을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에요.

 

이방인과 이 초대교회가 알았던 모든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진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신학이 이러한 일은 일어날 것을 그들은 상상도 못했어요.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고 있을때조차도 절대로 그런 세례가 일어날 것을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어요. 베드로는 아주 쇼크를 받은 거예요. 내가 어떻게 이들을 세례를 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우리와 동일한 영을 부어주셨다면 그럼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어요.

 

그리고는 그들이 거기서 나와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베드로가, 그곳의 뉴스가 베드로 앞서서 그곳으로 갔어요. 그 소식으로 교회가 완전히 혼란에 빠졌어요.

모든 사도들이 모든 장로들이, 베드로여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어떻게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는가! 도데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믿는 모든 것에 이것은 반대되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베드로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내가 듣고 보고 체험한 것을 좀 말할 수 있게 해 달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잠잠했어요. 아! 그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갑작스럽게 이 모든 변화가 일어났어요. 절대로 어떠한 부흥도 사람들이 가졌던 사고방식을 완전히 변화시키지 않고 일어난 그러한 부흥은 없었어요.

 

그러한 필요한 깨달음을 우리가 놓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열매를 내지 못하는 것이예요.

그리고 제가 또 다른 보기를 줄 수 있다면 행15장입니다. 행15:1-20까지 함께 읽습니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나아 그들 사이에 적지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호외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도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느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아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모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르므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것은 또 다른 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바꾸고 깨트려버린 사건이죠. 모세의 율법과 그들의 할례의식을 내버릴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절대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어요.

사도들에게 특별한 것이 도데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겸손함이 잇었어요. 하나님의 손을 인식할 수 있는 겸손함이 그들에게는 있었어요. 하나님의 음성, 목소리를 인식할 수할 있는 겸손함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영토로 이끌고 가시는구나! 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겸손함이 있었어요.

 

아주 갑작스럽게 교회가 성장했어요. 그들이 만약 이전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그저 유대인의 교회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깨달음을 완전히 새롭게 해 주셨어요. 그리고는 복음이 열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것이 땅끝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어요.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께 이러한 순복함이 없었더라면 복음이 절대로 열방으로 흩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운동이 하나님의 역사가 그곳에서 완전히 멈춰버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일에 대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돌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역사하기를 멈추셨다‘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교회가 완전히 분열되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킬 때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분리되어서 하나님과 동행해서 계속 전진하는 사람이 있기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교회사가운데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또 일어났어요.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잘 깨닫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사와 부흥의 역사를 다시 한번 연구해 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흥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 역사를 바라보면 그들이 이러한 시점, 꽉 막히는 시점에 이르러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순복하고 돌파해 나가는 시점이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시점에 이르렀을 때그곳에서 멈추고 그냥 되돌아 가버려요. 왜냐하면 그것을 돌파하고 갈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그 시점에서 중단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또 중단하십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그 단계에서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셔서 사용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앞에 순복함은 단회적,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예요. 이 순복함이 반복적으로, 순복해야 되고 또 순복해야 되고 순복해야 되는 것이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한가지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두가지, 여러 가지를 변화시키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가르치시고 그 다음, 다음, 또 그 다음을 가르치시기 때문이예요. 우리의 깨달음에 잘못된 부분을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하나, 둘, 셋 고쳐나가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번 그러한 변화된 시점이 올때마다 거기에는 우리가 포기하는 기회가 항상 있는 거예요. 그 가능성이. 오직 우리의 겸손함과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가 그 시점을 돌파하고 지속하고 또 지속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항복해야 되는 그 시점을 계속적으로 돌파하는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 부흥에 충만한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종들과 남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다 읽을수가 있죠. 이러한 완전한 주님이 전 지역을 변화시키는 부흥이 임할 때, 그 기도했던 사람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완전히 놀라게 되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완전히 장악되고 그냥 압도 되고 말아요.

 

왜 그럽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깨닫고 이해했던 것보다 하나님께서 훨씬 더 크게 훨씬 더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기 때문이죠. 그 이유 때문에 진정한 부흥이 그렇게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예요.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절대로 반응하시지 않는구나!, 하나님이 상관하시지 않는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예요.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사람들이 그 시점을 돌파하고 지속하기를 원치 않기때문이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정한 부흥은 아주 드물게 드물게 일어나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드문이유가 사람들이 그정도의 깨어짐의 역사, 그정도의 순복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이것을 잘 들어보세요. 이 주님 앞에 순복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 만약에 그것을 돌파하고 나아갈 때 우리하고는 다른 사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부흥사를 읽어보면 그 부흥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읽을 때 아주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품도 희귀한 성품을 가지고 있고 바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성품들을 하나님께서 인식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기록하죠. 그래서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부흥을 일으켰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되게 했을까요? 이것은 그들이 자연적으로 타고 생겨난 성품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들안에서 깊이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우리가 부흥사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사용되었던 이런 부흥주자들에 대해 읽어보면 그들은 한 부흥에만 쓰임받았던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셨던 것을 우리가 읽어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들이 사용되었던 부흥을, 한부흥 두 부흥, 거칠때마다 점점 더 깊은 단계로 주님앞에서 그들이 깨어지고 변화되었던 것을 우리가 읽어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들중에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싸이클을 그들이 돌파했을 때 그들이 거기서도 부흥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다음 단계로 이끌기를 원하셨을 때 그들이 거길 가는 것을 실패했어요. 근데 실패는 항상 인간적인 논리를 거기에 순복할 때 일어나는 일이예요. 그 중에 한 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이반로버츠에요.

 

웨일즈 부흥을 일으키도록 사용하셨던 사람이죠. 그 부흥은 강력한 아주 강력한 부흥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흥을 더 깊은 단계로 이끌기를 원하셨을 때 이반로버츠가 하나님과 함께 전진하지 못했어요. 그가 혼돈에 빠졌고 그리고 미혹에 빠졌어요. 그리고는 부흥으로부터 그가 제거되어 나갔어요. 그리고 성령님을 부인하는 그 단계까지 가버렸어요.

에반로버츠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계속 에반로버츠의 삶에서 역사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그가 부흥을 목격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역사하기를 원하셨어요.

 

여러분이 아주사의 부흥을 읽어보면 윌리엄 시무어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리고 프랭크베틀맨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윌리엄 시무어는 부흥을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이죠. 근데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윌리엄 시무어가 그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프랭크베틀맨이 그 책에서 기록하기를 왜 윌리엄 시무어가 그때 그 시점에서 실패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적고 있어요. 그 이유중에 하나는 그가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겸손함을 잃어버리는 것이었어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제가 이런 결론으로 마감하기를 원하는데 부흥을 위해서 돌파하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고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에 그 세대 많은 사람들도 동일하게 주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동기부여를 해 주었어요. 그래서 부흥이 많은 사람에게 넓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죠. 그래서 이들을 부흥에서 돌파하는 첫세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첫세대였고 두 번째 세대는 그들의 완전한 순복에 대한 필요성을 이 첫세대만큼 보지 못해요. 왜냐면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가운데 흐르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확장되고 있기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기때문이고. 왜냐면 이미 많은 것들이 이미 다 유지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두 번째 세대가 들어왔을 때 그들이 이 첫세대가 그렇게 돌파하며 주님께 순복했던 그 체험없이 그들이 들어왔고 그냥 거기서 흘러서 같이 갈 수 있죠. 그들의 첫 세대 부모의 세대가 아직도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기름부음이 흐르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어요. 그 깊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개인적인 시점을 돌파하는 것 없이 이미 그들이 모든 것을바르게 하는 방법을 부모에게 배웠어요. 그래서 이제 부모의 세대가 떠났을 때 그들은 그 부흥을 지속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단계가 점점 내려간다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들이 모든 바르게 하는 방법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는 새로운 것을 어떻게 퍼올리는지에 대해 그 방법을 알지 못해요.

 

그리고 이제 3세대가 일어나게 되요. 그런데 모든 부흥사를 보면 세 번째 세대가 일어날 때 그 부흥이 죽어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 세 번째 세대는 하나님 앞에 깊이 자신을 깨트리며 깊은 항복을 하는 것을 알지 못해요. 그들의 모델이었던 그 두 번째 세대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한 세대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름부음을 새롭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들의 단계가 계속적으로 이제 내려 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세 번째 세대는 일반적으로 첫세대가 회개했던 그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세대가 회개했던 인간적인 논리로 이 세 번째 세대가 그냥 그곳으로 돌아가버려요. 이제 그때 교회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부흥이 없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세 번째 세대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을 할 수 가 없어요. 왜냐면 어제 그들이 체험했던 모든 것때문에 그들은 그냥 만족하는거에요. 그리고 그들이 과거에 체험했던 것에 대해서 아주 자랑스러워해요. 교만함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래서 세 번째 세대에게는 아주 깊은 회개, 깊은 깨어짐, 깊은 순복함에 이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요. 그것을 잊기(있기)위해서는 진정한 은혜가 필요한 것이예요.

 

그래서 절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렘29장에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단계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을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혼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더 단체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그런 단계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이것은 훨씬 더 쉽게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겠습니다.

하나님.. 이러한 단계에 돌파를 할 수 있는데 대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우리가 개인적인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부흥을 달라고 구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지역사회에 부흥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옵소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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