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소망이 없다

2018.02.23 08:23

박상형 조회 수:67

나에겐 소망이 없다(시78:32~3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짓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을 보고서도, 그들은 여전히 죄를
지으며, 그가 보여 주신 기적을 믿지 않았다”(3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거듭되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진노를 쏟지 않으셨다.


“마음은 분명히 그를 떠났으며, 그가 세우신
언약을 믿지도 않았다”(37)
“그런데도 그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의 죄를 덮어 주셔서 그들을 멸하지 아니하시며,
거듭 그 노하심을 돌이키셔서 참고 또 참으셨다”(38)


하나님이 저들에게 진노의 대접을 다 쏟아놓지
않으신 이유는 인간의 육체는 바람같이 사라질
연약한 존재임을 잘 아심으로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사람은 다만 살덩어리,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신다”(39)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들이 바람과 같은 존재인 내가
반복적으로 실패해도(죄를 지어도) 여전히
이스라엘 처럼 소망이 있는 이유로 보는 것이
올바른 적용일까?


아니다 그렇게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적용이다.
적용은 공평하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는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성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 말이다.
(여기서 선택은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민23:19)
하나님의 선택에는 미리아심이 있다(롬8:29)
하나님의 선택이 지금은 잘못처럼 보여도
결국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몰랐다.
자기들이 잘나서 선택받았다고 착각했다.
내가 무언가 잘한 것이 있으니 선택받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은 세상의 생각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신 마음에 세상의 생각을
섞어버렸다.


선택과 구원은 다르다.
구원받았다면 선택받은 것이지만
선택받았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쪽으로 선택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세상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기 위한 선택이었지
저들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렇게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적용하는 사람은 구원은 모른 체
선택까지만 아는 사람이다.


마치 요한의 세례만 알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잘 몰랐던 아볼로처럼...(행18:25)


그러므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그렇게 교만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소망이 없다.
나를 바라보면 볼 수록 나를 알면 알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그렇게 적용하면 안된다.
늘 괜찮다고 하면서 그것이 긍정이고
그것이 잘하는 것인냥 나를 몰고 갈테니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를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나 안에는 아직도 나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말씀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나를 빼내고 은혜를 채워냐 하니까!
그리고 그것을 빼내는 일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 이고
평생에 걸쳐서, 죽기 직전까지 할 일이다.
나에겐 소망이 없다.
(2018. 02.2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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