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사랑한다

2019.02.06 07:17

박상형 조회 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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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사랑한다(막12:28~34)



한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모든 계명중에 첫째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첫째 계명 뿐 아니라 둘째 계명까지 알려 주신다.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왜 예수님은 첫째 계명을 물었는데

두번 째 계명까지 알려주셨을까?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따로 떼어놔서는 안되는데 

사람들이 자꾸 분리시켜서 그러시는 것이 아닐까?



첫째 계명만 믿음의 일이고

둘째 계명은 사람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일까?



나는 누구를 사랑하지 못한다.

특히 어느 누구를 나보다 더 사랑한다거나

내 목숨 만큼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누굴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못한다.

내 안에는 그런 세포가 없다.

또한 내 이웃이 누구인지 몰랐을 뿐더러

그들의 몸보다 내 몸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더해진 이후로

내게도 이웃이 생겼다.

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고 또 따르고자 하는

순원들이 내 이웃이었다.

그리고 그 이웃은 점점 내 몸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을 위해 마음을 떼어주었고

그들에게 시간을 떼어주었다.

가끔이지만 생명을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안다.

내가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러는 것임을



매일 매일 내 안에 들어온 그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주신다.

내 몸과 같은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신다.



최근에는 이웃이 늘었다.

교회의 지체들이다.

너무 예뻐보이고,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만 봐도, 아니 몇 주만에 봐도 

그들 얼굴에 묻어있는 예쁨은 없어지지 않고, 

그들에 대한 가슴의 사랑은 식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애뜻해 지는 것 같다. 

내가 사랑에 빠졌나?



요즘 이웃에 대한 영역이 점점 늘어난다.

직접 대면해서 얼굴을 볼 순 없고

글로만 만날뿐이지만 오고 가는 글 속에는 

진한 사랑이 오고간다.



그러나 이웃이 늘어난다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늘어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사랑하게 해주실 테니까!



내 이웃은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중요하다.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나는 교회안에 갇혀서 하나님과의 사랑타랑만 하고

자신을 신격화시키며 돈과 명예를 무엇보다 사랑하면서

성공을 목적으로 삼고 그 성공에 지체들을 동원시키는,

하지만 정작 지체들에게 영적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등한시하는 목회자를 이웃이라 할 수 없다.



내 이웃은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씀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더 각별하게 해주고

이웃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말씀안에는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없다.

따라서 명예도 없고 성공도 없다.

명에와 성공을 바라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말씀으로 이웃을 사랑한다.

그에게 말씀의 양식을 먹이고

그에게 말씀의 시간을 내어 주고

그에게 내 몸을 떼어주고 싶다.



나는 말씀과 이웃과 사랑에 빠졌다.

(2019.02.06.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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