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어디 있을까?

2019.06.19 08:46

박상형 조회 수:3

말씀이 어디 있을까?(렘17:12~18)


어떻게 하면 치유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14)여호와여,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치유될 것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구원받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가 찬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질문을 해 본다.


치유를 받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해서 치유를 받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일까?


예레미야가 여호와에게 치유를 요청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구원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해야 치료해 주시냐고
무엇을 해야 구원해 주시냐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말 대신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면 치유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면 구원될 것이라고 한다.
(14)여호와여,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치유될 것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치유와 구원에 내 입깁이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치유와 구원의 절대권한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는 것이 먼저이다.
하나님은 내가 어쩔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내가 찬양하는 분이시고 나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14) 여호와여,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치유될 것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구원받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가 찬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부와 명예와 인기와 스타됨이 소망이면서
여호와에게 치유와 구원을 바라는 것은
여호와가 자신의 소망이 아니며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알지만 아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나 역시 하나님을 모른다.
나라고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과 같지는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체로 하나님께 치유와 구원을 요청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일을 평생 계속 하고자 한다.


저들이 예레미야를 조롱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있냐고?
여호와가 계시다면 그 말씀을 지금 임하게 해 달라고
(15)보십시오. 그들이 저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지금 임하게 하라!”


역시 말씀이다.
여호와를 부인하는 것도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도
모두 여호와의 말씀에 달려있다.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


말씀을 소홀이 대하고
말씀을 적당히 보고
말씀을 필요할 때만 본다면
내가 여호와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그렇게 대우하면서
여호와께 치료와 구원을 요청하는 뻔뻔스러운
모습으로 살지는 않아야 하겠기에 나는 말씀을 묵상한다.


묵상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말씀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를 보고 있는데
왜 자꾸 말씀을 보여달라고 하는지...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더 알기를 소망하면서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2019. 06. 1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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