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연스럽고 더 당연하게

2019.07.13 11:03

박상형 조회 수:6

더 자연스럽고 더 당연하게(시107:10~22)

 

 

그들이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에 앉아

쇠사슬에 묶인 채 고난에 빠진 일이 있었다.

(10)그들이 어둠 속에,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앉아 쇠사슬에 묶인 채 고난에 빠진 일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었다.

(12)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가르침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극심한 고통은 말씀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들의 고통이 극에 달했고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18)그들의 영혼이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을 그때,

(19)그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분이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시는 방법은 바로 말씀이었다.

(20)그분이 말씀을 보내 그들을 고쳐 주시고 그들을 파멸에서 구해 주셨다.

 

 

고통의 해결과 말씀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고통의 원인도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었고

그 그통의 해결도 말씀으로 인해서 였다.

 

 

그들에겐 말씀이 전부였고 모든 것이었던 것 처럼 보인다.

 

 

지금도 그래야 하는데...

성도는 말씀이 전부여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다.

토요일 외박을 해서 집으로 와야 했는데

선생님이 꼭 외박을 해야 하는 이유를 데라고 했다.

 

 

나는 주일에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이라며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 말로 나는 선생님의 눈 밖에 난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 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긴 했지만

교회가 모든 것 이었다.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고...)

 

 

지금 나는 아침에 말씀묵상을 한다.

그리고 내 모든 의식구조는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모두 맞추어져 있었던 것처럼

말씀묵상에 맞추어져 있다.

 

 

말씀묵상을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

저녁에 늦게 자면 안되고,

 

 

혹시 아침에 바쁜일이 있으면

저녁에 미리 묵상을 해 놓고 잔 적도 있었고

아니면 더 일찍 일어나서 묵상을 했다.

(물론 아침시간을 놓쳐 점심 때 즈음에 한 적도 있다)

 

 

아침 묵상을 놓친 날은

내 몸에 다른 사람의 피가 흐르는 것 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나는 목사는 아니지만

목사님들이 하시는

기쁨의 노래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선포하는 일들을

일반성도들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말씀 묵상을 하고 말씀공부를 하며

회사 업무시작 전에 말씀을 보고

업무 시작 후에 말씀을 본다.

휴일인 오늘은 아내와 밥 먹으면서 말씀을 이야기 하고...

 

 

내 모든 세포조직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말씀을 거부해서 고통을 받는 일이 

내 삶에 존재해서는 안되겠기에

그런 일이 더 이상 내게서 나타나지 않아야 겠기에 

이렇게 산다.

 

 

내가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어찌보면 유난을 떠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조금만 틈을 주거나 조금만 소홀히 하면

말씀을 거부하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어질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결코 귀찮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밥 먹는 것이 귀찮지 않은 것처럼...

살아있으면 자연스럽게 해야 되는 일이니까!

살려면 당연히 해야되는 일이니까!

 

 

말씀을 먹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더 당연히 여겨지기를 소망하면서

휴일 시작~~

(2019. 07. 13.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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