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묻다

2020.11.28 08:02

박상형 조회 수:4

삶을 묻다(단5:24~6:2)

 

 

드디어 벽에 손가락으로 쓰여진 글자의 뜻이 풀렸다.

그 뜻은 한마디로 “너 끝났어!” 라는 뜻이었다.

(26)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벨사살왕이 너 끝났어! 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그 옛날 예루살렘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멧세지를 왕에게 전했을 때 

모든 관료들이 나서서 불같이 화를 내며 예레미야를 죽이려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벨사살왕은 불길한 말을 들었지만 화를 내지도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다니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약속한 대로 벼슬과 상을 내린다.

 

(29)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벨사살은 왜 자신에게 불길한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을까?

 

 

1. 예견된 사실이었기 때문에?

 

지금 바벨론의 나라상황은 벨사살왕이 이러한 큰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었다.

지금 바벨론은 바사와 고레스 2세가 바벨론 제국을 다 점령하고 수도인 바벨론 성을 

2년 동안 포위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황후의 어머니가 잔치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상황이 더 짐작이 된다. 

혹시 최후의 발악을 큰 잔치로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불길한 말을 들었을 때 화를 내지 않고 다니엘에게 상을 준것은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을 받아들인 것 아닐까 싶다.

 

 

2. 완악함 때문

 

그러나 그 뜻을 풀어말한 사람은 바벨론에 다니엘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다니엘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어볼 만은 했다.

하지만 벨사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완악함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을 알고 있으면서도 포로로 잡혀온 유다 사람이냐고 묻는 

벨사살의 마음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기물들에 술을 담아 먹으려고 한 짓은

누가 뭐라고 해도 들을 수 없는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다니엘이 해석한 불길한 말에 긍정의 반응을 보인 점이었다.

 

 

3. 알고 있다는 것

 

벨사살은 다니엘을 알고 있었다.

다니엘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선왕때의 다니엘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선왕과 다니엘과의 관계도 알고 있었으며 다니엘의 하나님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알고 있었을 뿐 선왕과 달리 앎을 삶에 적용하지 않았다.

알면서도 적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망함이 남아있었다.

(30)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4. 적용한 다리오

 

그 날 밤에 메대사람 다리오가 벨사살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는다.

다리오도 다니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리오는 벨사살과 달리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삶에 적용한다.

 

(1)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a)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5. 알고 있나?

 

나는 알고 있나 묻는다.

알고 있다면 물어봐야 한다.

알고 있다면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이 망하는 것이 라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점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불교대학까지 다니는 불심이 좋은 직원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주는 정해진 것이고 팔자는 고칠 수 있다.

현재의 태어남은 전생의 죄에 기인한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 나고

죄를 적게 지은 사람은 부잣집에 태어난다는 등의 얘기를 신나게 했다.

 

 

그럼 내가 지금 잘 살아야 후생에 잘 태어나겠네?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누가 그 점수를 주는데? 라고 했더니 자신이 스스로 매긴다고 한다.

 

 

내가 나에게 공정하게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후생과 연결되어 있다면 지금 내가 후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가?

이렇게 물었더니 더 이상 종교얘기 하지 말자며 말을 끊는다.

 

 

내가 세운 미래의 대책은 말씀에 나를 매일 진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단받은 내용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께 내 삶을 묻는다.

 

(2020. 11. 29. 토요일)

 

카페 정보

회원:
26
새 글:
0
등록일:
2011.05.09

로그인

오늘:
3
어제:
3
전체:
499,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