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말씀을 해석하다

2020.12.17 08:21

박상형 조회 수:6

말씀으로 말씀을 해석하다(벧전3:1~12)


오늘 본문은 여러가지 질문이 생각나게 한다.

(질문)
1.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내의 그러한 행실이 남편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1)아내들이여,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일지라도 말이 아닌
아내의 행실로 인해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남편을 말로 구원하려 하지 말고 행실로 구원하라는 것이다.


남편의 구원이 아내의 복종의 이유라면
이미 구원을 받은 남편에게는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2.
두려움으로 행하는 아내들의 깨끗한 행실을 보고
남편이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하는데
(2)그들이 두려움으로 행하는 여러분의 깨끗한 행실을 보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행하는 아내들의 깨끗한 행실은 무엇일까?
아내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깨끗한 행실이 있다면 더러운 행실도 있다는 것인데
남편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아내들의 더러운 행실은 무엇이었을까?


3.
아내들에게 외모를 단장하지 말고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라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값진 것이라며...

(4)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구원을 위해 머리를 꾸며 금붙이를 달아서도 안되고
옷을 잘 차려 입거나 겉치장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 시대에 일도 적용되지 않는 말을 과연 성경으로 볼 수 있을까?
 

4.
아내의 어떤 깨끗한 행실과 남편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한다고 해서
남편에게 구원이 전해질 수 있는 것일까?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아닌가?


5.
남자는 여자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일까?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주는 것 같은데
또한 아이를 낳으니까 귀하게 여기라고 한다.
이것 또한 그 시대에는 통하는 말이었을지라도
지금 시대에는 매장당할 말 같은데 성경에 이런 것이 써 있어도 되는 것일까?

(7)남편들이여, 이와 같이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인 것을 알고 그녀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할 사람으로 알아 귀하게 여기십시오


6.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는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 라고 한다.
그래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라 하신다.

(9)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십시오.
이는 여러분이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복을 받게되는 것일까?


(답)
1-1. 여자들이 복종해야 할 남편은 말씀을 모르는 이방인 남편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었다.


2-1. 그러므로 아내들이 두려움으로 행해야 할 것들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행실이었다.


2-2. 머리를 땋아 내리거나 머리에 금장식을 달거나 옷을 차려하게 입는 것은
당시 아내들이 아닌 창녀들이 행하는 일 아니었을까?


창녀들의 모습이 아니었을지라도 아내들이 그런 치장을 했다면
그녀들의 마음이 남편이 아닌, 집이 아닌 딴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1.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썪지 않을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기 위한 최고는 도구는....... 말씀이다.
다른 것으로 해 봤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지 아마...


4-1.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남편의 구원만 아내의 행실로 되게하는 특혜를 주시는 것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처사가 아니다.


5-1. 요즘음은 여자가 힘이 더 세다. 아이도 안 낳고 사는 부부도 많다.
여자가 불쌍한 시대에서 남편들이 불쌍한 시대로 바뀌었다.

세상은 바뀌고 바뀌며 존재한다.
하지만 말씀은 안 바뀐다.

부부는 힘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찍어 먹으며 살아가야 한다.


6-1.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받은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말씀이다.
세상은 나를 매일 죽이려고 하지만 말씀은 매일 죽어가는 나를 살리신다.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아니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며 그리스도인 행세를 했을 것이다.


말씀이 없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두렵다.
말씀이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한다.
(2020. 12. 17.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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