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상대 vs 믿음의 상대

2023.11.23 08:03

박상형 조회 수:0

세상의 상대 vs 믿음의 상대(잠21:15-31)

 

 

1. 세상에는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 때로 부터 세상에는 상대에 대한 법칙이 정해졌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선 상대가 잘못 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영화를 보완해서 

드라마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첫째날 게임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

게임에 참가한 두 사람이 

한 가지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게임에 참가한 어떤 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에게 게임의 어드벤티지를 줄 수 있고

아니면 어떤 한 사람을 당장 떨어뜨릴 수 있는데

기회를 부여받은 두 사람 모두 합심해서

당장 한 사람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세상의 법칙을 너무 잘 설명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되었다. 

 

 

그들은 상대가 떨어져야 나에게 상금이

올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협동을 해서 상금을 나눠가질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의인도 상대가 있고

정직한 사람도 상대가 있다.

 

(18)악인은 의인 대신 치르는 몸값이 되고 

죄를 범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 대신 치르는 몸값이 된다.

 

 

상대가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예수님의 상대

 

예수님이 상대가 있는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오셨으면

세상의 법칙을 초월하실 수 있겠으나

사람으로 오셨기에

상대가 있는 세상에 오신 것이고

세상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지 않으셨고

세상의 상대법칙에 따르셨다.

 

 

예수님의 상대는 모든 죄인이었다.

죄인을 위해서 자신이라는 몸 값을 치루신 것이다.

 

 

예수님의 몸 값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죄인이어야만 한다.

죄인이 아닌 사람은 구원이라는 예수님의 몸 값을 

받을 수 없다.

 

 

3. 내 믿음의 상태

 

내 믿음의 마음은 어떨까?

 

 

상대를 죽여야 내가 잘 된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을까?

남의 행복을 보면 매 아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던

그 마음 말이다.

 

 

아니면 남이 잘 되면 박수쳐 주고

함께 기뻐해주고 있는 믿음일까?

 

 

믿음은 더불어 이다.

믿음안에는 함께 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 하셨고

죄인과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내 믿음안에 함께가 없고 나만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16)깨달음의 길에서 떠난 사람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내 믿음안에 상대를 위한 어드벤티지는 없고

떨어뜨림만 존재 한다면 

그 역시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4. 내 상대

 

내게 믿음이 있다면 내 상대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보다 아래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조금이나마 어드벤티지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상대이다.

 

 

아직은 몸이 회사에 묶여있고

학업도 병행하는 중이라

시간을 많이 낼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두 번의 성경공부 나눔시간은

내 상대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지체들이 말씀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때는 나 역시 감동이 된다.

 

 

또한 그들의 몸이 아프거나

힘든일이 있어서 참석을 못할 때는

내 맘도 아픈 것을 느낀다.

 

 

내 지경이 넓어진다는 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상대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더 많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지

내 몸의 크기가 더 커진다는 말이 아니다.

 

 

나 부터 말씀을 바르게 먹고 건강해 지고

내 상대들이 행복해 하고 회복하게 되는

바른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3. 11. 23.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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