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것 같지만 촉촉하고 넉넉한(8:26-40)

 

 

1. 에티오피아 내시

 

그 내시는 왕궁의 재정담당 관리인이었다.

그는 멀리서 예루살렘까지 하나님께 예배하러 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27)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러나 그는 이방인 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는

육체적인 결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23:1)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런데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다가가라고 하신다.

 

 

2. 복음

 

이방인이고 더구나 육체적인 결함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에

참여한 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이방인을 위한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공식입장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일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복음을 위하여 살다가

위협받고 쫓겨 가는 신도들의 형편보다는

오직 복음전파에만 집중하신다.

 

 

복음은 형편이 나아지면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 내 형편이 나아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성령님의 생각과 다른 마음인 것 같다.

 

 

3. 열정보다는 말씀

 

에티오피아 내시는 신앙심이 깊어 보인다.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려고 오지를 않나,

또한 예배 후 가는 먼 길, 피곤 할 텐데

손에서 성경책을 놓지 않고 읽으며 가고 있으니 말이다.

 

 

성령님이 그 모습을 보셨고 그리고 빌립을 보내셨다.

 

 

그런데 빌립을 보내신 것은

그의 예배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시기 위해서였다.

 

 

성령님이 여유가 없고 일만 좋아 하시는

팍팍하신 부장님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팩트이다.

성경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복음의 본질인 말씀에 대한 이해가

단지 신앙의 열정으로 커버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 외우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본질이신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2: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4. 읽는 것이 이해되십니까?

 

딱 봐도 한 눈에 이방인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남들 다 걸어가는데 혼자 수레에 앉아서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더 대단해 보이는 일은

그 사람에게 다가간 빌립의 첫 마디였는데

그의 말은 안녕하시냐는 안부인사도 아니었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라는 아부 인사도 아닌

읽는 것을 깨닫느냐는 건조한 말이었다.

성령님이 건조하시니 성령이 보낸 사람 역시 건조하다.

 

 

그러나 이 건조한 말을 내시는 촉촉함으로 받아들이고는

빌립을 수레에 올려 태우고 말씀해석을 부탁한다.

그리고 가다가 물이 넉넉한 곳에 이르자 세례까지 받는다.

 

 

나는 매주 월, (격주) 목요일 성경공부를 인도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전부터 하던 공부였기에 별 광고가 없지만

화요공부는 이제 시작되었기에 카톡방에

성경공부 안내 광고를 한다.

 

 

광고는 건조하지만 내용은 풍성하오니

촉촉하게 받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신앙열정도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있지만

읽는 말씀까지도 바르게 이해하고 싶은

촉촉한 성도들과 함께

넉넉한 말씀을 바르게 알아가고 싶다.

(2023. 07. 08.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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