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선생님...
2011.01.07 15:51
남편과 다투고 마음이 무척 상한 일이 있었다.
아이가 자서 소리도 못 치고 그냥 있자니 미칠 것 같았던 나는
남편이 벗어놓은 러닝샤쓰를 힘껏 잡아당겼다.
러닝은 '북'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정신 없이 러닝을 찢으니 속이 후련했다.
"엄마." 눈앞에 은진이가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찢어진 러닝을 뒤로 감췄다.
"왜 아빠 옷을 찢었어?"
"찢어진 거야."
"찢었잖아."
"네가 잘못 본 거야."
점심을 먹고 아이와 은행에 갔다.
입금을 하는데 어디서 종알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있잖아요, 아줌마, 우리엄마 힘이 세요. 옷도 막 찢어요."
누군가 싶어 돌아보니 은진이었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를 붙잡고 옷 찢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도저히 은행업무를 볼 수 없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은진이는 전화가 와도 그 이야기를 했다.
야단도 치고 과자로 회유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저녁에 아이를 목욕시킬 때쯤 완전 녹초가 되었다.
힘든 하루를 서둘러 마감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이 됐다. 내일도 아이가 말한다면?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할말 있어?"
"있잖아, 찢어진 아빠 옷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
"왜냐면, 창피해서 그래."
은진이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알았어. 이젠 말하지 않을게.
근데 엄마도 다시는 화나도 아빠 옷 찢지 않겠다고 약속해."
은진이와 나는 거품 묻은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은진아, 그 이야기 왜 자꾸 했어?"
"엄마가 옷 찢을 때 너무 무서웠거든.
그걸 나만 알고 있으니까 더 무서운 것 같았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마다 조금씩 덜 무서워졌어.
하지만 엄마가 반성했으니까 이젠 됐어."
나는 내가 어른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딸과 함께 배우고 자라는 작은 인간에 불과했다.
다섯 살 은진이는 진짜 나의 선생님이다.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겠지요? ㅋㅋ
특히 자녀들, 순원들 앞에서
우리가 더 성숙한 성품의 사람들이었으면 합니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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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희
2011.01.0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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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민
2011.01.07 16:45
오.. 정말 똑똑한 다섯살 선생님.. 저도 저 아이와 같은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 나이가 들면 들수록 왜 저는 어린아기가 되는걸까요..ㅋ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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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야
2011.01.07 18:09
ㅋㅋㅋ 저에게 곧 생깁니다.
재잘거릴 딸 아이가, 무섭군요, 깨어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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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기
2011.01.10 06:57
매주 토요일마다 지성이 언어치료가 있습니다.
조금 늦어...얼른 차에 태우고 서둘러 가는 길..
차 한대가 유유히 끼어들더니 서행을 하며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러자 지성이 왈,
아줌마 왜 안가요, 아줌마 비키세요..
허걱...
제가 그동안 아줌마 운전자를 넘 홀대했나 봐요...ㅋㅋ
말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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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2011.01.10 12:52
저도 가끔씩 말끝에 "치~" 하고 비웃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가차없이 딸아이가 "아빠 치~하지 말랬지.."
"그말 왜 했어?" 하고 담담한 어투로 물어봅니다.
이유를 말해줄때 까지 계속 물어봅니다.
결국 "미안해 이제 안그럴게!!" 하고 얘기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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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아.... 삶으로 가르친것만 남는다는 문구가 떠오를때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하답니다.
보고 있다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 같아요..
웃으며 읽은 글이 갑자기 긴장감 팍 들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