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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공동체  '보나콤' 

보은 예수마을 이야기-강동진 목사

보은 예수마을의 시작

 

 

보은예수마을 혹은 보나콤(Bonacom)이라고 불리는 저희 공동체는 1998년에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에서 시작한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지금은 7가정이 함께 모여 농사를 짓고 자녀들 교육은 홈 스쿨을 하면서 농업을 통한 선교에 힘쓰는 중입니다.

공동체를 시작하기 8년 전부터 경희대학교 학생들과 서울대 농과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성경공부 모임이 만들어져 함께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성경을 공부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농촌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농촌이라는 현실을 동시에 보면서 이 땅의 농촌, 농업 그리고 농민들을 위한 성경적인 대안이 무엇일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기도와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이 사도행전 2장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만들어진 성령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수님을 닮은 교회만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이 내려진 후, 저희들은 공동체에 대한 책들을 함께 읽고, 한국의 공동체들을 찾아 그분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1997년에는 유럽으로 가서 잘 알려진 공동체들을 탐방하며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 성경대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한 일이고,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998년에 저희는 각자 다니던 직장과 교회를 사임하였습니다.

저의 경우 처음 교회를 사임하려고 했을 때, 담임목사님의 강한 만류와 초기정착을 지원해주시겠다는 여러 차례의 제의를 받았지만, 큰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아 공동체를 시작하게 되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작은 미자립교회에서 어렵게 목회를 하고 계신 다른 목회자들에게 오히려 누를 끼치는 것 같아서 일체 도움 받기를 거절하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보은으로 내려갔습니다. 보은의 마을들을 모두 훑고 다니면서 제법 큰 마을이었다가 적어진 마을, 그래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아도 별로 부대끼지 않을 만한 마을, 그 위로 다른 마을이 없어서 물과 공기의 오염이 적은 마을, 도회지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후미진 마을을 찾다가 지금의 대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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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농사 그리고 집짓기

 

대원리는 삼국시대 때부터 도자기를 굽던 오래된 작은 마을입니다.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도회지로 나가기 전에는 90호 정도가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25호도 정도 살고 있습니다. 농사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어서 힘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바쁜 농사철이 지나면 취로사업이나 막노동판에 나가서 농업 외의 수익을 벌어옵니다.

이런 마을에 저희가 처음 들어가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빌리니 “젊은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 왜 돈도 안 되는 농사를 지으려 하느냐”는 타박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재배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어슴푸레하게 들었지만 화학비료 대신에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제초제 대신에 어떻게 해서 풀을 잡아야 하는지 아무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첫 해 파종을 하고 난 후부터 풀을 잡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농사를 지을수록 왜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도회지로 나갔는지 뼈저리게 공감되었습니다. 첫해 농사를 결산해 보니 장정 3명이 벌어들인 순수익이 15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듬해는 공동체의 첫 번째 집을 지었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 모델하우스 철거하면서 나오는 중고목재를 못 박혀 있는 채로 헐값에 구입하여 일일이 못을 뽑고 그 나무로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기대가 무너지며 갈등이 고조되다.

 

공동체를 시작하기 전에 저희는 함께 성경도 공부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교제를 나누었기에 공동체로 살아도 별로 큰 갈등이 없이 잘 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고, 젊고 미성숙한 인격들이 부딪히면서 몇 안 되는 공동체 식구들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다툼과 마찰이 일어났습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수고하며 애써 농사를 짓지만 필요를 채울 수 없어 늘 부족한 상황은 식구들로 하여금 지치게 만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공동체를 시작한 지 4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시점부터는 많지 않은 식구들 사이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노선갈등이 빚어졌습니다. 한 쪽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100% 공유하는 기독교 공산주의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다른 한 쪽은 구약 희년(禧年)의 가르침대로 공유와 사유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이견에 불과하던 것이 대화를 할수록 갈등은 증폭되었고 대화는 논쟁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반격하는 일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마다 일어났습니다. 다툼이 생길수록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인 환상과 기대가 깨어지고, 무수한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농촌 현실이라는 너무도 거대한 장벽과 모든 것을 더불어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낯선 삶의 형태가 주는 어려움이 공동체 식구들의 마음을 실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다툼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연약한 공동체를 꿈꾸고 지난 몇 년을 살았는가 하는 깊은 좌절감들이 공동체 식구들 모두에게 자리 잡았습니다. 노선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증폭되었고 공동체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

 

모여서 회의를 할 때마다 싸우던 우리는 2002년 11월 초순에 이틀 동안의 대토론회를 하기로 하고 그 회의의 결과에 따라 공동체를 해체하든지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첫 날 이른 아침을 먹고 모인 우리는 그날 하루 종일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끝도 없는 말싸움이 오갔고 새벽 한 시가 넘어서까지 다투며 서로를 공격하던 우리는 지칠대로 지쳐 다음 날 또 모일 필요가 있는지를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사람들이었고 서로를 사랑하기엔 너무도 속이 좁고 미성숙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틀 동안의 회의를 하기로 하였기에 다음 날 다시 모였습니다. 아침 먹고 싸우고 점심 먹고 또 싸웠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기 전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던 우리들 중에 성령님께서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신 것처럼 싸우던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면서 그렇게 미워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싶었던 상대방에게 무릎으로 다가가 눈물콧물 흘리며 용서를 구하게 하시고 각자의 허물과 죄악을 주 앞에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정신없이 울며 기도하던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대언되었습니다. “나는 너희의 참 좋은 하나님이야” 라고 하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공동체를 시작한 분도 이 공동체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날 밤이 늦도록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공동체는 단순히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대로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성령님의 임재, 그분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이 공동체였습니다.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이기에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거나 꿈을 이루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도구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닮는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령의 열매

 

성령님이 임하신 이후 공동체는 무엇보다 예배가 달라졌습니다. 모여서 찬양할 때마다 찬양의 소리가 달라졌고 예배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마을 주민들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의아해 하실 정도로 예배가 달라졌습니다.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찬양할 때마다 찬양은 살아있었고 기도는 뜨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먹고 살기 어려워 농업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성령님이 임하신 이후 농업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없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십 년을 농사짓는 농부들도, 농업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도, 정치가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저희도 이 말에 동의했고 또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무서운 반(反)기독교적이고 반신앙적인 요소가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향하여 “네 얼굴이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인간을 향한 저주와 심판의 말씀이었지만 되짚어보면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라 그 저주 안에서 축복이 숨어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면 먹고 살수 있다는 약속이 그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을 결코 믿지 못할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사람들 마음 속에 그렇게 각인시켜버린 것입니다. 첫 번째 약속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다음 약속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묵상을 하던 중에 그 동안 이 땅의 농촌을 쥐락펴락하며 사람들을 속이며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든 사단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여 주리라.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보여주리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2003년 공동체는 논에서 밭에서 놀라운 수확의 열매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공부하고 연구하던 양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양계를 위해 필요한 자료들, 양계장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하면서 경험한 은혜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이후 공동체는 농업을 시행하면서 크게 세 가지 변화를 주었습니다. 먼저, 농업을 단순한 논농사와 밭농사에서 벗어나 작물재배와 양계와 염소 사육을 함께 병행하여 논과 밭에서 나오는 농업부산물로 가축을 기르고 가축의 부산물을 다시 논과 밭으로 넣어주는 유기순환농업으로 공동체 농업을 전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논농사와 밭농사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친환경 자재들을 만드는 법,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법을 공동체 모든 식구들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우리와 알고 지내던 분들을 중심으로 회원들을 모집하여 우리가 재배한 농산물들을 회원들에게 판매하는 농산물 직거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건강한 농산물을 도시의 회원들이 믿고 구매하시게 되고, 저희들은 판매에 큰 염려를 하지 않고 생산에만 주력해도 되는 안정적인 농업구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두 가정을 한 팀으로 구성하여 농사를 짓도록 하였습니다. 협업과 분업이 조화를 이루게 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농업은 기본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이 많을 때는 공동체 모든 식구들이 힘을 합쳐 같이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두 가정을 한 팀으로 해서 그 팀 안에서 서로 협력해서 일을 하게 하고 일이 많아지면 팀과 팀이 서로 협력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협업한 두 가정이 공평하게 반분하여 나누어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농업생산성이 높아지고 판매가 안정되면서 자연스럽게 각 가정의 수익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임한 성령의 열매

 

2003년에는 마을에 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농림부 산하기관인 농업기반공사에서 200억을 들여 우리 마을 안쪽에 두 개의 큰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것입니다. 처음에 마을 주민들은 우리 마을 농사에 필요한 작은 저수지를 하나 만들어주는 줄 알고 모두가 고마운 마음에 동의하는 도장을 찍어주었는데 알고 보니 마을이 수몰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계획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저희를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을 중심으로 마을 청년회를 재정비하고 청년회가 중심이 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농업기반공사에 정보공개를 요구하여 정부가 가진 계획을 알아내고 환경단체들의 도움으로 댐이 만들어졌을 때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의 토질과 지질대(地質帶) 그리고 수질을 조사하면서 우리 마을에는 저수시설을 지을 수가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어 이를 바탕으로 진정서를 작성하여 관계기관으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정부의 계획이 수정되고 마을에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수정되었습니다. 최종결과가 알려진 후 마을은 잔치집이 되었고 주민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청년회를 주축으로 정부의 농촌활성화 기금들을 끌어들여 마을을 새롭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계획서를 작성하고 농림부와 행자부 등에 제출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에 농림부에서 주관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우리 마을이 당당히 일등으로 뽑혀 무상으로 2억 4천만 원을 지원받게 되었고, 행정자치부로부터 생활기반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억 원이 마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을 도로가 새로 건설되고 상하수도 시설이 새롭게 정비되었습니다. 마을의 담장이 돌담으로 예쁘게 바뀌고 자그마한 공원도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히 농촌마을에 정부의 자금이 들어왔다는 표면적인 사실보다 성령님께서 작은 공동체에 임하신 이후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에까지 얼마나 놀랍게 변화를 일으키시고 생명을 불어넣으시는지를 경험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농업과 선교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은 바르게 하시고 온전케 하셔서 생명으로 충만케 하신 이후에는 반드시 선한 열매가 맺어지게 하시고 그 열매를 서로 나누게 하십니다. 저희 공동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우리 농사 현장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생기게 되었고,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가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저희 양계장과 농사현장들을 보러 오시고, 저희가 하고 있는 농사를 선교지에서도 시행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요청들이 쇄도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만 해도 두 분의 집사님들이 중국 광동성에 있는 야오족 마을에 가셔서 양계장을 지어드리고 왔습니다. 그 마을에는 양계장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져 벌써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람풍족 마을에 한 가정이 단기선교를 가서 그곳에 양계를 시행하는 일을 모색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3월부터 인도네시아 청년 한 명이 공동체에 와서 공동체 농업과 양계를 배우는 중입니다. 지난해 봄부터 지금까지 헝가리 집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 캐나다 인디안들을 위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공동체에 오셔서 머물면서 양계를 배워갔습니다. 중국의 한 성에 있는 지하신학교 학생들에게 신학과 함께 마지막 학기에는 농업기술 특별히 양계를 가르쳐 교회 지도자들이 자립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은 중국 요녕성 심양시에 있는 조선족 학교와 연결되어 중국에 농업학교를 세우고 조선족 청년들과 그 지역 농민들에게 농업교육을 시키기로 하고 현재 학교를 건축하고 있는 중입니다. 중국 측에서는 땅과 건물을 제공하고 저희는 농업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내년부터는 중앙아시아쪽 국가들, 이슬람지역으로 저희 식구들이 나가 양계를 가르칠 예정입니다.

 

공동체의 소망-자녀교육

 

공동체는 현재 4년 전부터 아이들을 공립학교에서 데리고 나와 홈 스쿨을 시키는 중입니다. 은밀한 의미에서 저희가 하는 교육의 형태는 대안학교와 홈 스쿨을 병행한 형태입니다. 공동체 교육의 기본적인 원칙은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인을 양육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가지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아이가 이후에 장성한 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도 순종한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학업은 홈 스쿨의 원리대로 자기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하게 하였습니다. 몇몇 과목들은 공동체 어른들이 맡아서 함께 수업을 합니다. 철학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고 과학도 이렇게 공부합니다. 저희는 공동체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만물을 사랑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로 자라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공동체 농업을 연구하면서 선교지 어디에서나 접목할 수 있는 농업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근대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농업은 돈이 되지 않으면서 힘만 든 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하여 다들 포기하고 버린 일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먹거리가 없이는 누구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선교지 주민들은 복음만 없는 것이 아니라 먹을거리도 적어서 가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지에 나가 계신 선교사님들의 대부분이 선교국가의 도시에 기거하십니다. 가족들의 생활과 교육문제, 안전문제 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만 하더라도 농민의 수가 전체 인구의 64%인 8억이 넘습니다. 이들은 선교사님들로부터도 외면당하면서 무수한 이단들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빠져나가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농업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과 같지만 산업이 발달할수록 먹거리의 문제, 농업의 문제는 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을 제대로 연구하여 친환경적이고 창조질서에 맞는 농업기술로 무장한다면,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떡과 함께 복음을 증거하는 모퉁이돌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는 대체에너지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래와 선교지의 또 다른 문제는 에너지입니다. 공동체가 석유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에너지를 연구하고 보급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좋은 땅, 좋은 사람, 좋은 열매

 

결국 공동체는 성령받은 사람들이 함께 할 때 성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농촌과 목회』 제39호(2008년 가을호) 98-108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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