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교 성북구청장과 수행비서 김대섭씨의 아름다운 우정

[2010.06.25 17:21]   모바일로 기사 보내기


[미션라이프]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청장님 가까운 곳에서 오래 ‘버틸 놈’으로 골랐습니다. 이 화분이 치워지기 전까지 꼭 찾아뵐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가져봅니다. 아자! 아자! 오늘처럼 승리하시는 하루하루 쭈욱 이어가시길 언제나처럼 기도드립니다. 김대섭 올림.”

지난 2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수행비서가 보낸 축하 화환과 카드를 본 순간 미소 지었다. 가장 먼저 당선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는 수행비서 대섭씨. 그러나 몸이 불편해 화환과 글로 대신한 것이다. 하지만 대섭씨의 바람과 달리, 그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튿날 그는 낙선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수행비서를 만났다. 경기도 부천시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인 대섭씨를 찾아갔다. 그는 침울한 표정의 대섭씨를 위로했다.

“더 큰 계획으로 주님이 인도해주실 거야. 만약 내가 당선됐으면 당장 수행비서를 바꿔야 할 텐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잖아. 넌 나의 영원한 수행비서야.”

퇴임을 앞둔 서찬교(67·온누리교회 장로) 성북구청장과 그의 수행비서 김대섭(33)씨에 관한 이야기다.

재선에 성공해 8년간 성북구를 이끌며 ‘가슴 따뜻한 구청장’으로 불려온 서 구청장은 이달 말 공직생활 47년을 마무리 한다. 20세에 말단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서울시장 비서실장, 양천·구로·은평·강동구 부구청장, 서울시 감사관, 송파구 관선구청장직을 역임한 ‘행정의 달인’이다. 그러나 그에겐 ‘새벽기도의 달인’이 더 잘 어울린다. 1984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서 구청장은 2002년 1월부터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렸다. 그가 구청장으로 재직하며 펼쳐온 금연금주운동, 공개·개방·투명 행정 등은 모두 기도 가운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특히 “소외 이웃을 보살피는 게 행정의 방향”이라고 소신을 밝히며 먼저 이웃들의 애환과 어려움을 듣고 성실히 해결해줬다.

바로 그 옆에 언제나 대섭씨가 있었다. 그는 2008년 5월 서 구청장의 수행비서로 발령받았다. 지난해 8월 여름 휴가 때 물놀이 사고로 경추골절 및 신경손상을 입어 전신마비가 되기 전까지 24시간을 발로 뛰며 서 구청장과 함께 했다.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서 구청장은 거의 매일 대섭씨를 찾아갔다.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대섭씨에게 그는 한가지 약속을 했다. “대섭아, 네가 다시 나올 때까지 수행비서 자리는 비워둘거야. 용기를 잃지 말고 꼭 일어나야 한다.”

비서가 없다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서 구청장은 3선도 준비해야 했다. 수행비서를 발령내야 한다고 결제가 올라왔지만 이내 반려했다. “불편한 건 내가 조금 참고 견디면 됐습니다. 저에겐 무엇보다 ‘김대섭’이란 한 영혼을 살리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구청장의 약속은 곧 그에겐 희망이었다. 대섭씨는 1년 가까이 수행비서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자신을 믿어준 구청장에 보답하기 위해 재활치료에 힘을 쏟았다.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주님을 몰랐던 그가 신앙에도 눈을 떴다. 주변에선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대섭씨는 해냈다. 그는 컴퓨터 작업이나 세면 등 간단한 일상생활을 홀로 감당한다. 그에겐 꿈이 생겼다. “복직해서 지난날 직업 공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처럼 하나의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청장님께서 갖고 계실 ‘묵직한 체증’을 해소해 드리고 싶어요.”

다음달부터 ‘자유인’이 된다는 서 구청장도 제2의 삶이 기대된다고 했다. “비록 구청장에는 떨어졌지만 마음이 편해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을 때에 멈추게 하신 것 같아요. 이제 교회에 가서 마음 편히 주차봉사도 하고, 집회에도 참석하려고요. 나누고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구청장과 영원한 수행비서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희망을 전하는 일꾼으로 더 큰 미래를 준비 중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