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칼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강선영 원장[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5월엔 사랑에 대한 설교가 많은 달입니다. 부모님의 사랑, 스승에 대한 사랑, 부부간의 사랑 등.... 대부분의 설교에서는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랑,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의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 사람이 그런 설교를 듣는다면 죄책감이 생길 것입니다.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만, 왜 사랑하지 못하는지 왜 사랑이 스며나오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다쳤는지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치유된 이후에 사랑에 대해 요청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면 선생님께 맞는 게 일상이었어요. 당연히 내 잘못으로 맞는 줄 알았기 때문에 맞아도 아무 말 안 했어요. 귀통배기도 맞고 마대자루로 엎드려 뻗쳐해서 맞고... 학교 가면 내내 맞는 게 일이었지만, 맞을만 하니까 맞는다고 생각했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선생님이 때렸다고 뭐라하지 말고 대들지도 말고, 여기 있는 학부모들도 선생님한테 아무 말 말고 그 사랑에 보답하세요. 그래야만 합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귓전에 이명이 울리는 듯 했습니다. 부당하게 맞아도 아무 말 말라니......수십 년 전, 치마 입은 여학생들을 엎드리게 해놓고 몽둥이로 퍽퍽, 때렸던 어떤 선생님의 분노에 찬 얼굴이 떠올랐고, 그 선생님을 향한 다 삭이지 못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침 조회시간에 성난 얼굴로 교탁을 내리치더니 운동장으로 집합시켜서 때렸는데, 왜 맞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렇게 부당한 폭력을 당했고 그런데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선생님의 부인과 아주 심하게 싸우고 난 다음날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좋은 선생님들을 추억할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은 나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헌신적이셨고 과분한 사랑을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몽둥이나 회초리로 때리거나 말로 심하게 모욕을 주는 선생님들 역시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은밀히 말하면 ‘사랑의 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나 교사가 매를 때릴 때, 정말로 기분이 좋거나 화가 전혀 나지 않는 상황에서 때린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이 넘쳐나는데도,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데도 때리는 부모나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매를 때릴 때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분노’가 스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한 ‘사랑의 체벌’을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향기 짙고 아름다운 꽃이라도 때리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은 흉기가 됩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아프게 하고 생채기를 새기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가 가진 무수한 분노가 사실은 부당하게 혹은 잘못을 했더라도 잘못한 기억은 사라지고 오직 맞은 상처만 기억하는 선택적 기억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늘도 한 젊은 내담자가 ‘병적인 분노’로 인해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분노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 분노를 앓고 있는 중환자였습니다. 그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우울증과 강박증에 걸리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분노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이혼하자고 한다며 아내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직면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엄청난 태도와 힘이 자신의 분노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분노도 치유받아야 할 병입니다. 분노의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아이를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때립니까? 때리지 않고 아이를 바르게 훈육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배웠던 그 방법대로 또 다시 폭력적 훈육을 하고 있습니다. 한 해에 아동학대로 죽거나 다치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가 수천 건이 넘습니다. 몸이 다치지 않았다 해도 마음이 다친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사랑, 사랑이 무엇입니까?

때리는 것은 결단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어떤 핑계를 댄다 해도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때려야 아이가 제대로 자라야한다는 생각은 왜곡되고 편협한 생각입니다. 때리면 아이들은 맞아서 아픈 상처 때문에 구부러져서 자라게 됩니다. 그 구부러진 것을 펴기 위해 아이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투쟁적으로 고통당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폭력은 없습니다.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때리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맞은 아이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증오가 싹이 나고 엄청난 속도로 자라게 됩니다.

 

5월, 무수한 사랑의 표현들이 화려하게 난무한다 해도, 맞아서 울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 이 땅에 진정한 사랑은 요원합니다. 이제, 꽃으로도 때리지 맙시다. 때리지 않고 훈육할 방법을 배웁시다. 부모님들,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분노와 습득된 폭력적 훈육의 태도를 버리고 진정한 사랑의 훈육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로새서 3:21”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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