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따라오는데?(마20:29~34)


두 부류의 무리가 있습니다.

크게 무리지어 예수를 따라다니는 군중과

불쌍히 여겨달라며 소리를 지르는

작은 장님 무리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이 보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룬 장님과

목적을 이루지 않은 무리입니다.


큰 무리의 사람들도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따라 다녔을 텐데

그 무리가운데서는 목적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따라다닌다고 목적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가 봅니다.


따라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따라다녀야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도

따라다닐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따름의 목적이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일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눈이 떠진 장님은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졌지만

예수님과 헤어지지 않고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눈이 떠지면 이것도 보고 저것도 봐야지

보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눈이 떠지자마자 한 일이

예수를 따라다니는 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를 따라다니는 이유가

내 신변잡기에 굵고 중요한 빨간 줄을

채워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더 잘 따라다니기 위해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더 잘 따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즐겁게 따라다닐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예수를 졸졸 따라다니는 목적입니다.


아내와 결혼한 후 20년간 한번도

이혼할 마음을 생각해보지 않았듯이

내가 예수를 따라다닌 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마음은

예수 따라다니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혹 두 눈이 감긴다 해도 따라다니는 것을

멈 출 생각은 없습니다.


내 담당마귀에게 힌트를 주노니

예수를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는 임무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임무를 찾는 것이 너에게 좋을 것이다. 잉!

(2011.08.23.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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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만 요기에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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