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21∼23절

오늘 본문의 배경은 부활 이후의 사건입니다. 19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숨어 떨고 있습니다. 주님이 떠나가셨다는 고립감에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19∼23절에 2번이나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조지 모리슨은 이 평강에 대해 “넉넉한 자원을 소유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평강은 예수님의 임재를 통한 평강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의 평강입니다. 이 은혜의 평강을 선포하신 후에 주님은 엄중한 소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목자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타락과 부패 가운데 회복시킬 놀라운 경륜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확고부동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섭리 속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신 것은 엄숙한 소명이자 명령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제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 복음의 지평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실 때 주신 소명을 감당하고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요 14:12). 신앙생활은 의존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의존은 특권이고, 순종은 의무입니다. 이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소명 의식에 입각한 사람이 성령에 눈을 떠 우리의 영적 용량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오늘 생명에 대한 실재 능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투철한 소명과 순교적 영성을 갖고 세상과 싸워 이겼습니다. 60∼70%가 노예였던 1세기의 성도들이 전한 복음 앞에 로마제국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AD 4세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까지 교회는 세상에 동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장 칼뱅, 마르틴 루터, 존 낙스 같은 개혁가들은 참 교회상을 회복하기 위해 말씀 선포와 성례, 그리고 권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 400∼500년 지나오면서 내면화돼 갈등구조가 깊어지고 고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 교회는 다시 한번 1세기 초대교회의 거룩한 야성과 전투적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롬 1:16)이라고 말했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복음의 영광, 소명, 은혜의 평강 앞에 대 로마제국이 항복한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사명자의 사역을 감당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