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33절

개신교의 본래 명칭인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란 ‘반항’ ‘개혁’이란 어의를 갖고 있다. 이는 가톨릭 교회에서 그들의 반대자 ‘아니오(Nein)’라고 외치는 자들에게 명명한 것이다.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중세기 교회는 암흑시대를 산출할 수밖에 없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과 내용을 상실한 교회, 권력에 결탁한 교회, 물질주의가 만연된 당시의 교회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회적 역기능을 갖게 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엄청난 공포 속에서도 성서의 근본적인 진리 바탕에서 은혜에 의한(by), 믿음을 통한(through), 의인 이론(실질원리)과 성서는 그 자신을 해석한다는 이론(형식원리)을 정립한 마르틴 루터는 대담하게 95개 조항의 신앙 양심선언을 통해 역사의 새로운 물줄기를 터놓았다. 그로 인하여 1521년 1월 21일 교황 레오10세에게 이단으로 정죄를 받고 출교당한 루터는 1521년 4월 18일 브롬스 의회에 소환 명령을 받았다.

어전회의(御前會議)에서 교황의 지령을 받고 온 교황특사로부터 95개 조항의 반박 선언문을 취소하면 살려주겠다는 엄청난 공포와 협박, 간사한 회유와 협박을 받았을 때 “나는 교황을 믿지 않소. 나에겐 오직 성서와 양심이 있을 뿐이오”라면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고 했다. 결국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서(Sola Scriptula), 오직 은총(Sola gratia)으로만 인정하고 그 외 모든 것은 다 ‘아니오’라고 외친 것이다.

종교개혁 494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분열과 분파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 역사는 어느덧 교파의 수가 200에 가까울 정도로 갈라져 있다. 예수 믿는 숫자를 자랑하지만 마치 머리 깎인 삼손처럼 덩치(교회와 연합단체의 증가, 교회와 여러 시설물, 교인수, 헌금, 기타 매스컴 등등)는 크지만 능력 상실로 참 볼썽사나운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종교개혁 정신(오직 믿음, 오직 성서, 오직 은총)에 철저했던 일제 강점기의 교회는 극소수에 불과했어도 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과 사랑 실천으로 민족의 광복과 조국 근대화를 이룩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질 때 두 가지 커다란 정신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와 개혁이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본질로 돌아가는 것(ad fontes)이고, 개혁(Reformation)이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ad biblia)이다. 성경에도 없는 제도와 조직을 만들어 사람을 얽매이게 하고 면죄부 판매, 성직 매매, 성물·유물·성자 숭배, 마리아 승천설 등 해괴망측한 모든 것을 청산한 종교개혁 앞에 이와 유사한 행태들이 오늘의 교회에 스며든 모든 것이 깔끔히 정리되는 종교개혁 기념이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빛이 없고 소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다. 그 사명 잘 감당하라(마 5;13∼16)”고 하시는 명령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새기고 잘 받들어 엄숙하고 떨리는 맘으로 루터와 같은 눈으로 자신과 교회와 역사를 보면서 나날이 새롭게 하나님의 요청에 책임 있는 응답을 해야 할 것이다.

엄상현 목사 (포천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