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았을 때, 나단은 죽기를 각오하고 왕에게 직언했습니다. 영국의 존 녹스는 여왕 메리에게 번번이 추상같이 직언했고, 메리는 녹스를 보기만 해도 떨었습니다. 보름스 국회에서 마르틴 루터는 자기의 신앙을 굽히지 않으면 죽음을 당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때 세계적 권력을 대표하는 자들이 루터를 향해 ‘네 잘못된 저서를 취소하겠느냐?’고 심문할 때 루터는 ‘내 글은 성경대로 기록됐으니 일언반구도 취소할 수 없소이다’고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나단이나 녹스, 루터는 모두 일사각오(一死覺悟)했습니다. 일사각오 연후에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 일사각오 후에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라서 말을 못하는가? 왜 벙어리 개가 되었는가? 오늘날 목사도 일사각오 연후에 할 말을 해야 목사의 권위,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개 경찰관 앞에서 쩔쩔매고서야….”

일제시대 금강산 수양관에서 고 주기철 목사가 200여명의 목사들에게 전한 설교다. 일본경찰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마태복음 3장1절부터 13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의 설교를 예의주시하며 듣고 있던 일경은 몇 차례나 제지하려다 결국 위의 대목에서 격노하며 “중지하시오. 해산”이라고 외쳤다. 주 목사는 평양 감옥에 갇혀 20여일 절식하다 순교했다.

설교의 도입부에서 주 목사는 선언한다. “오늘날 목사는 곧 선지자요 예언자입니다.” 목사는 이 시대의 예언자다! 주 목사는 엘리야와 예레미야를 거론하며 예언자의 권위를 말한다. “엘리야의 눈에는 바알도, 만능의 대왕 아합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엘리야의 신앙,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권능, 예언자의 권위가 설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의 권위는 과연 바로 서 있는가? 못 서 있는가?”

그가 이 땅을 떠난 지 67년이 되었다. 2011년 종교개혁 주간에 주기철 목사가 묻는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목사의 권위, 그 추상 같은 예언자의 권위는 바로 서 있나요? 나와 여러 순교자들이 뿌린 피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국교회는 영향력이 있다. 숫자로 상징되는 힘이 있다. 각 교회는 나름의 파워가 있다. 종종 그 파워로 한국교회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영향력(influence)과 권위(authority)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영향력이, 파워가 있다고 권위가 생기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의 불륜 시인 당시 수억명의 사람들이 TV를 켰다. 우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귄위는 없었다.

이 종교개혁 주간에 이 땅의 목회자들은 스스로에게 예언자의 권위가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일사각오와 희생, 순교의 정신 없이 예언자의 권위는 결코 서지 않는다. 복음으로 이 어두운 시대를 이끌어야 할 당신은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영향력인가? 권위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가?

국민일보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