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15·끝) 선교본부 사역 맡으며 ‘청지기의 삶’ 깨달아

[2011.10.13 19:12]

 

 

2008년 WEC국제선교회 한국본부로 돌아오자 우리 부부는 본부장으로 선출됐다. 물론 선교사가 됐을 때부터 한국본부로의 부르심을 확신했지만 본부장 책임이 지워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도, 선교 경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14년 전 한국본부가 창립될 때부터 준비위원장으로, 또 이사로 섬겨왔지만 그것으로 이력을 내민다면 어림도 없는 막중한 책임의 자리였다.

 

이 일을 위해 그처럼 엉겁결에 회사 사장직을 내려놓게 하시고 뒤도 돌아볼 수 없도록 급행으로 나를 이끌어 오신 것인가. 오랫동안 조직생활에 익숙해 있었고, 또 기업체를 운영하면서 항상 몇 년 후를 내다보고 일해 온 전문 기업가의 안목 같은 것이 한국본부에 필요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막상 본부장직을 수락한 후 이 일은 세상일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 회사생활에서도 기도하며 일했지만 전적으로 주님께서 회사를 운영하고 다스리신다는 개념이나 믿음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철저하게 주님이 대장님이고 회장님이셨다. 전적인 순종, 위임받은 청지기 자세가 아니면 처음부터 엇박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책임감에 눌려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때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으로 위로하셨다. “짐은 내가 지고 있다. 너는 따라만 오면 돼. 발을 맞추고, 자, 어서!”

 

주님을 따라가면서 배워야 할 것이 있었다면 그분의 온유함과 겸손함이었다. 사회적 지위, 나이, 경험, 지식은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됐다. 누구와 함께 간다는 것은 무엇보다 마음이 맞아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느끼는 것, 그의 호흡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님과 발걸음을 맞출 때 나의 행보는 자유함과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본부장일은 회사보다 더 바빴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본부 사역을 위해 필요한 재정도 빈틈없이 채워주셨지만 사역에 필요한 사람들도 적시에 보내주셨다. 본부 사역을 한다는 것은 선교지에서 일하는 것 이상의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직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사라면 반드시 해외로 나가 활동하는 사람이라 인식하고 있지 국내에서 선교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 사역자들은 30명 정도 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사례를 받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이들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2년 자신의 삶을 드리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고, 선교지로 가는 것을 늦추고 본부를 돕기 위해 머무는 이들도 있다. 후원비가 삭감되는 것을 감수하고 본부의 부름에 달려온 선교사도 있다.

 

WEC선교회는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다. 4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의 메일이 선교지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른 나라에 있는 선교사 자녀학교에 아이들을 떨어뜨리고 오는 선교사, 자녀들과 함께 쓰레기 마을로 이주해가기로 했다는 소식, 내전으로 이웃 나라에 피신했다는 이야기, 뺑소니차로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연, 추방의 아픔, 그리고 동역자의 예상치 못한 죽음 등.

 

선교사들의 헌신 앞에서 가끔 자문해 본다. 우리 사역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는 그들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 사역이 가치 있는 것도, 우리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그들이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충분히 가치 있는 분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달린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