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조와 최동원. 나와 같은 또래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단순한 야구 천재가 아니다. 영웅이다. 그들은 타석에서, 마운드에서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팬들은 두 사람의 거만해 보이는 모습조차 사랑했다. 이제 그들은 고인이 됐다. 장효조 55세. 최동원 53세. 이 땅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다. 자신만만, 위풍당당했던 그들도 암세포를 이기지는 못했다. 아, 불세출의 야구 영웅 장효조와 최동원이 이 땅에 없다니.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름을 확실히 남겼다. 결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과 함께. 장효조의 통산 타율 3할3푼1리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이다. 최동원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둔 것도 결코 쉽게 깨질 기록이 아니다. 야구선수로서 그들은 위업을 이뤘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그들이 ‘이 땅에서 이룬’ 어떤 위업도 이미 ‘이 땅을 떠난’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장효조의 전설 같은 3할3푼1리의 타율이 도대체 고인과 어떤 상관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최동원의 기적 같은 한국시리즈 4승이 이 땅을 떠난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2년 전 대장암과 폐암 수술을 받았던 박용규 총신대 교수를 최근 만났다. 수술 받은 직후 병원에서도 만났었다. 한국교회 대표적인 역사신학자로 부흥운동의 전문가인 그의 고백이다. “눈앞에 죽음이 어른거렸을 때,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나의 학문적 업적과 자랑, 명예,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중요했던 것은 오직 하나, 영생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물론 사는 날 동안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수술대 위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박 교수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눈앞에 뒀던 우리의 영웅 장효조와 최동원에게도 중요했던 것은 결코 그들의 야구 기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위대한 기록도 깨지고 그들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서 어떤 영웅적 삶을 살았건, 이 땅을 떠나는 순간 장효조와 최동원에게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영생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리라.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이 문장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 다음 차례다.” 언젠가는 자신이 ‘다음 차례’로 이 땅을 떠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 ‘다음 차례’가 오고 있다. 어김없이 다음 차례가 됐을 때, 그 순간 내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 그때, 무엇을 남겨야 할 것인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며, 또 하나님이 나를 알아보시는 그 초청에 응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창조되고 구원받은 이유이며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소원을 충족시킬 유일한 해답입니다.”(빌 존슨 목사)

 

국민일보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