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신학자 가운데 예일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신학부에서 종교심리학을 가르쳤던 성공회 신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이란 분이 있다. 그는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말씀에 힌트를 얻어 예수 그리스도를 ‘상처 입은 치료자(Wounded Healer)’라 정의했고 예수를 따르고자 결단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이 상처 입은 치료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설 때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은 바로 ‘상처 입은 치료자’란 이름이라는 것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가슴, 고독한 자, 가난한자, 눌린 자와 함께하는 삶은 오직 상처받을 각오를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고 인생의 상처를 아는 자만이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으며 삶이 주는 상처야말로 한번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에 영롱한 ‘영광의 훈장’이 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헨리 나우웬이 심장마비로 죽기 몇 해 전, 갑자기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말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져 그와 그의 글을 좋아하던 많은 분들을 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그가 갑자기 신학교에서 은퇴한 이유는 건강진단에서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상아탑의 보호 속에서만 안주하다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단다. 신학교 교수이며 신부였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꺼져가는 자신의 삶의 불길을 태우고 싶었던 곳은 아름다운 자연 속 별장이 아니라 뉴욕의 할렘가, 캘리포니아의 빈민촌, 병원에서 고독 속에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들의 ‘곁’이었다.

그는 그들 곁에서 ‘함께 죽어가는 자로서’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고통 속에 주어진 축복의 비밀을 함께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귀한 신비의 선물을 발견하는 은총을 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하면서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다. “주어진 생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마음 아프게 느껴지는 일은 사랑하던 사람들, 가까운 친구들과의 이별이 아니라 그동안 나 자신이 비켜섰던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 용서의 단어를 사용하길 애써 부정했던 몇몇 사람들에 대한 깊은 죄책과 안타까움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말하길 “나는 평생 예수의 삶을 지켜보며, 내 마음의 밭에 예수의 씨앗을 뿌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순간순간 내가 예수의 발자취를 놓쳤을 때, 내 마음에 미움과 증오의 가라지가 함께 자라났음을 느낀다. 나는 내가 심은 이 가라지를 사랑과 용서라는 이름의 제초제로 없애고 싶고 오직 내 마음밭에 예수의 꽃만을 남기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고백을 읽으며 신학과 삶을 하나로 통전시키려 노력하는 한 인간의 위대한 투쟁과 그 순례의 길에서 은은히 퍼져나는 예수의 꽃향기에 깊은 감동을 느낀 바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알듯 우리 인간은 참으로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다. 우리 안에는 우주와 연결되는 우주의 씨앗, 영원의 창문이 있는 반면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불리는 통제하기 힘든 욕심과 본능의 ‘어둠의 힘’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어느 잡지에서 이런 만화를 본 적이 있다. 10톤 이하의 차량만 통과하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다리에 10톤짜리 트럭이 나타났다. 트럭 운전사는 정확하게 10톤의 적재량을 실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통과한다. 그러나 그는 트럭의 짐 위에 커다란 검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트럭은 그 새 무게만큼의 ‘적재량 초과’로 인해 다리와 함께 무너져 계곡에 빠진다는 만화였다. 우리가 예수의 삶을 똑바로 지켜보며 그의 발자취를 놓치지 않고 좇을 때 마음속 어둠의 새들을 인식하며 그것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우주로 향하는 신비의 씨앗을 ‘예수의 삶을 지켜보며 가꿔 가는 일’에 대한 가르침이라 믿는다.

- 정석환의 삶과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