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신조어다.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가 올 초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물가 상승과 임금 동결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간 이하 소득계층을 지칭하며 처음 사용했다.

이 새로운 단어의 조합을 접하면서 ‘쥐어짜인 기독교(squeezed christianity)’란 말이 연상되었다. 지금의 기독교, 아니 교회를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 단어의 조합이라고도 여겨진다. 요즘 교회를 생각해보면 뭔가 답답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외부 ‘안티 기독교’의 공격에 따른 충격, 교인들의 재정 악화로 인한 교회 재정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교회, 기독교,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환하고 사방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자꾸 안으로 오그라들고 수동적인 감정이 앞선다. 왜 그럴까?

이런 기독교의 분위기 속에서 크리스천들은 아프다. 청춘들만 아픈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쥐어짜여 살다가 텅 빈 가슴을 채우기 위해 교회 언저리에 서성거리지만 정작 그곳 역시 쥐어짜인 또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발견하며 낙담한다. 낙담은 영적 미디엄(매개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듬직한 중간자로서 교회 지도자들을 생각하고 기대했건만 자꾸 그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교회사적으로 제사장과 사제, 목사 등 미디엄들이 제대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절망에 빠진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접촉(디바인 컨택·Divine contact)을 시도한 것이 신비주의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지금 교회를 바라보며 아파해하는 ‘쥐어짜인 크리스천’들은 ‘종교적이지 않지만 영적(Not Religious, But Spiritual)’이라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더욱 편승하고 있다. 쥐어짜인 기독교가 지속되는 한 21세기형 신비주의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 영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였던 체스터턴의 말을 빌리자면 ‘기독교를 시도해야’ 한다. 그는 말했다. “기독교는 시도된 적도 부족함이 드러난 적도 없다. 다만 어렵다고 여겨져 시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영국의 대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체스터턴의 말을 인용한다. “세상은 한 번도 기독교를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말들은 많이 했지만 기독교를 진정으로 시도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기독교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온통 쥐어짜여 있는 이 세상에서 기독교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정직한 답을 하고 진정한 기독교를 시도하는 것, 쥐어짜인 교회(squeezed church)에서 살아있는 교회(living church)로의 전환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리라.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