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공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의 크신 은혜로 무사히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잘 풀리는 듯했는데, 한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오영택 목사의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꼽 아래 부분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뜨거운 물과 찬물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샤워를 하면서 살갗이 벗겨질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원인도 치유 방법도 없는 불치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중추신경이 벗겨지면서 눈과 귀가 멀고, 마침내 뇌를 마비시켜 식물인간이 되어 죽는 병이라는 것이다.

설교할 때 자신의 힘으로 강대상에 올라가지 못해 성도들이 기도하는 사이 장로님들이 업고 올라가서 겨우 강대상을 붙잡고 설교를 하고, 다시 업고 내려와야 했다. 하루는 운전 중에 그만 차 안에서 실수를 해서 갈아입힐 옷과 세숫대야를 가지고 고수부지로 갔다. 너무도 서러워서 그곳에서 남편의 옷과 몸을 씻으면서 둘이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불치병의 남편을 지켜보면서 그 곁에서 그저 무기력하게 간호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서울중앙병원 영안실 앞에 차를 세워 놓고 한 달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했다. 한때는 내가 행방불명이 됐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개의치 않고 욥기를 읽어가며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런 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오해가 이어졌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간의 기도를 마친 후 돌아오자 남편은 “아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고 원망하며 화장실에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30분이 지나도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하도 이상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산만한 덩치의 남편이 엉엉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16세 때 신현균 목사님 부흥회에서 하나님께 선교사가 되기로 서원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남편에게 “하나님과의 약속은 목숨이다. 하나님께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죽어야 한다. 당신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득했다. 우리 부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고 있었기에, 하박국서 말씀을 붙잡고 결단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9)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선교를 하기 위해 건강한 사람조차 서 있기 어려운 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자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가능에 맞선다는 것과 나에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도 두려웠지만, 그렇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임을 확신했다.

마침 사우디아라비아에 계시던 한 지인의 소개로 우리 부부는 무슬림의 종주국을 향해 선교사로 떠나게 됐다. 그곳에 가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이라는 대가를 바라는 계산적인 마음은 결코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휠체어를 비행기에 싣고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하루에 9번씩 먹어야 하는 약은 공항에서 전부 버리고 전적으로 주님께 의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혼자 계단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뛰고 축구까지 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그때 남편에게 신유의 은사가 생겼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16세 학생이 치유되고, 천식과 심장병 환자 등 수많은 이들이 남편에 의해 고쳐졌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목숨도 건져주시고, 신유의 은사라는 큰 축복까지 주신 것이다.

 

[역경의 열매] 김형민 (4)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