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복이 있다. 복에 넘친 사람도 있고, 박복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복 받은 민족이다. 역사가의 시대 구분에 따라 박복하게도, 풍성한 복을 누린 역사로도 기록될 수도 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때 우리에겐 복이 넘쳤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복이 크고도 크다. 짧은 시간동안 이만한 성장을 거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어디 있던가? 그것은 우리 민족의 큰 복이다. 신앙적 측면에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부어주신 복이다.

수많은 복을 받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분명 결여된 한 가지 복이 있다. 그것은 ‘지도자 복’이다. 19대 총선 날 ‘지도자 복’을 생각해 본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우리에게 지도자 복이 있었는가’라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지지리도 지도자 복 없는 민족입니다. 이렇게도 지도자 복이 없을 수 있을까 싶네요.” 동감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물론 우리에게도 뛰어난 지도자들이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와 같이 오랜 시간 감옥에 있으면서도 정적들을 용서하며 화합을 추구했던 지도자, 태국 방콕의 전 시장인 잠롱 스리무앙과 같은 청백리 지도자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들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대신 국민들 앞에서 자기 욕망을 마음껏 분출했던 ‘무지한’ 지도자에서부터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이율배반적인 언행의 지도자들, 지도자다운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던 무능한 지도자들로 그득했다. ‘하이 포지션(High Position)’에 ‘로 퀄리티(Low Quality)’의 지도자들이 앉았을 때 연출되는 역기능이 너무 많았다. 솔직히 우리에겐 지도자 복이 없었다.

기독교계는 지난 시절동안 선거 때마다 기독 정치인, ‘장로 대통령’에 대해서 관심을 쏟았다. 그들에 환호했으며 ‘단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특정 후보의 손을 들어 준 적이 많았다. 그러나 지도자가 된 기독인들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이번엔 우리에게 지도자 복을 주셨다”고 토로한 적이 있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불행이다.

장로 대통령임을 자랑스레 내세웠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역시 장로인 현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기간동안 한국 기독교는 어떤 복을 받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또한 무수한 기독 국회의원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와 한국 기독교는 어떤 진보를 이뤄냈던가? 물론 알게 모르게 그들을 통로로 해서 받은 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 복’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해갈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기독교계에도 시대를 견인하며 부흥을 이끌 걸출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19대 총선에 이어서 연말에 대선이 있다. 이번에는 정말 지도자 복을 누리고 싶다. 하늘의 뜻을 구하며 긍휼을 지닌, 그러면서도 능력 있는, 섬기는 지도자를 만나기 원한다. 오늘 우리는 ‘지도자 복’을 넘치게 받고 싶다.

이태형의 교회이야기]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