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 4월 중에 저희 교회에 한번 꼭 모시고 싶습니다.”

 

2012년 3월, 한 일간지에 2개면에 걸쳐 내 인터뷰 기사가 나갔다. 기사의 헤드라인은 극적인 내 삶의 여정을 단숨에 압축했다. 기사를 보고 명성교회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김삼환 목사님은 내 기사를 보고 ‘이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시기에 출판한 자서전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월급을 받지 않고 일했던 내게 정당하고 좋은 자금원이 됐다. 책을 낸 이후 꼬리를 물듯 인터뷰와 일이 들어왔다. 아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 놓기를 작정하신 듯 했다.

 

일정은 바빠졌다. 미국과 캐나다, 한국을 오가며 바쁘게 일하던 어느 날, 행정안전부에서 연락이 왔다. 2012년 국민추천 시민대상 국민훈장목련장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내용이었다. 14년간 보츠와나에서 무보수로 자원 봉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한다.

 

내게 전화한 사무관은 행사 일정과 함께 배우자 한 분을 동행해 참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줬다.

 

“저는 배우자가 없는데...어머니를 모시고 가도 될까요?”

 

“예, 괜찮습니다. 꼭 모시고 오기 바랍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상식 때 뵙겠습니다.”

 

이 사무관의 감사는 도리어 내가 모든 분들에게 드려야 할 감사였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혼자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다.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내가 한 일을 대한민국 국민이 인정하고 알아준다고 한다. 희생과 헌신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 450명이 후보로 추천됐고, 그 중에서 수상자로 결정된 24명 가운데 내가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한 국민들과 지난 세월을 잘 살아준 내 자신에게 감사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에 홀로 남았을 때, ‘얘야, 나와 같이 살자’ 하시던 하나님께 형언할 수 없는 감사가 나왔다.

 

인생은 연극무대와 같다고 한다. 수상식 날은 우리 엄마 인생에 있어 최고의 무대였다. 내가 주연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엄마를 주연으로 삼았다. 그날은 아침부터 긴장되고 바빴지만 행복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 하셨다. 엄마와 함께 한 자리에 서는데 4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선 자리였다.

 

‘무학→우울증→맏딸 장애인→남편자살→청과물 시장 일용 노동자→자녀 다섯 중 세명 선교사→맏딸 국민훈장 수상.’

 

엄마의 삶을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니 나보다 더 불행하고 힘든 인생을 살아오셨다.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주신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게 있어 엄마는 낳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존재다. “누가 낳아달라고 그랬어!”라며 엄마에게 대들던 어린 시절은 이제 세월 너머로 사라졌다.

 

수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 마음은 감동과 감사로 넘쳤다. 겉으로는 아니었지만 마음으론 울고 있었고, 감탄했다. 그래서 인생이란 장구하다고 하는구나, 하루 이틀만 살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구나!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엄마의 삶이 보람 있는 삶으로 연결돼 감사했다. 사람에게 희망이란 바로 살아있는 것이란 것임을 또 다시 절실하게 깨달았다. 살아있어야 고난도 있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이 높다. 내 인생에 찾아 온 영광은 그간의 고난과 역경에 비례했다. 한 가지 더 분명한 것은 이 세상 영광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어찌 하늘 영광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역경의 열매] 김해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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