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어떤 심정으로 살아갈까.’

이는 평소 내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질문이다. 내 인생의 가장 심각한 고민은 지속적인 허리 통증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고통을 덜 수 있을까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평소보다 허리통증이 더 심해져 정말 하루하루가 힘에 겨웠다.

내가 늘 울며 날을 세우니까 하나님도 아파하셨는지 한 가지 지혜를 주셨다. 1미터가 넘는 큰 수건을 두 번 접어 허리에 감은 다음, 벨트로 꽉 조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허리가 곧고 반듯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도 앉아 있을 때 통증이 줄어들었다. 며칠만 하려고 했던 이 복대를 이후에도 풀지 못하고 살고 있다.

보츠와나에서 직업학교 교장이 돼 학교일로 바쁜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는 ‘아! 복대만 안 해도 살겠다’ ‘허리만 안 아파도 더 많이 일을 할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이 고통을 없앤단 말인가. 하나님께 고쳐 달라 청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만하길 정말 다행으로 알고 살았다. 1996년 선교대회에 참석차 미국에 방문했다 잠시 한국에 들렀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니 10년 만에 만난 지인도 있었는데 그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나! 해영씨, 미국 다녀왔다더니 척추 수술하고 왔어요?”

6년 만에 만난 엄마는 옷을 갈아입는 나를 보더니 등과 허리를 잡은 채 몇 번이고 쓸어내리며 신기해하셨다.

“미국 사람들이 너를 엎어놓고 밟았느냐. 허리가 반듯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보츠와나 사람들도 “몸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 올 정도였다. 사실은 이렇다. 복대를 한 지 13년, 보츠와나의 청소년들을 가르친 지 6년쯤 됐을 때, 나는 더 이상 복대를 두르지 않아도 아프지 않게 됐다. 치료를 위해 기도를 받은 것도, 특별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꼭 입어보고 싶은 청바지가 생겨 복대를 하지 않은 채 청바지를 입고 며칠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바지도 복대도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등과 허리가 완전히 1자형으로 고쳐진 건 아니지만 앉은 동안엔 허리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더 이상 물에 젖은 허리수건을 찾으러 다니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

한편 나는 오른쪽 다리가 왼쪽다리에 비해 2.5cm쯤 짧았다. 이 때문에 걸을 때마다 허리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물론 전보다는 훨씬 형편이 나아졌지만 이는 내 활동반경을 제한했다. 미국 유학을 고민할 때도 몸이 아플 것을 생각하니 선뜻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순전히 이 때문에 3년간 주저하며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래, 미국 생활로 허리가 더 아파져도 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린 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유학길에 올랐다. 보츠와나에서는 내 형편에 맞춰 생활할 수 있었지만 도시생활이란 것이 어디 그런가. 나는 이를 악물고 허리 통증을 참아내야 할 미국생활을 자원해서 선택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크나큰 주님의 은혜인데, 더 깊은 사랑을 체험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주님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돌아다니지 않고 교회와 학교공부에만 파묻혀 살던 내게 큰 선물을 주셨다. 유학한 지 3년쯤 됐을 때 우연한 기회에 한 목사님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게 됐다. 그러자 짧았던 오른쪽 다리가 길어지면서 두 다리 길이가 맞게 되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로써 나를 괴롭히던 허리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고통과 통증 없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말 그대로 펄펄 날아다니는 몸이 돼 하고자 하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앞으로 사는 동안 주님께 무엇을 더 구할 수 있을까! 그저 오직 감사와 영광만 돌려드릴 뿐이다.

 

[역경의 열매] 김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