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리학이 강조하는 프로이트의 가장 큰 오류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는 이른바 결정론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불행이나 작은 실수 그리고 어젯밤에 꾼 꿈까지도 전적으로 과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동기가 성격의 성향을 형성하는 시기가 아니라 결정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카운슬러들은 대부분의 상담시간을 어린 시절의 사소한 기억들을 회상케 하는 데 집중해왔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상담실에선가 내담자의 과거를 회상케 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9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유행하는 내적치유 운동도 바로 이런 결정론에 뿌리하고 있다. 소위 ‘내적 아이(inner child) 또는 성인 아이(adult child) 치유’도 나이는 성인이지만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스스로 판단을 잘못하였거나 인격 부족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은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성인기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실 결정론을 뒷받침할 설득력 있는 증거는 전혀 없다. 결정론자들은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질병, 체벌, 성적 학대와 같은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성인기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대단히 많을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예를 들어, 부모 이혼에 관한 연구에서도, 10대 초기나 사춘기에 한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도였다. 이들도 성장하면서 점차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에 성인기에는 그런 상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셀리그먼(M. Seligman)은 “유아기에 받은 깊은 상처가 성인기의 성격 형성에 다소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그것은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미미할 뿐이다. 요컨대 성인기에 겪는 장애는 유년기의 불행한 경험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기에 나타나는 우울, 불안, 불행한 결혼생활이나 이혼, 약물중독, 성적장애, 실직, 자녀 학대, 알코올 중독, 분노 등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불행에서 찾는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했다.

오늘 필자가 결정론의 오류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도 자신의 과거를 지나치게 괴로워하며 미래를 저주스럽게 내다보는 과거의 상처에 갇혀 지내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실제로는 성인기의 삶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과거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과거의 나쁜 일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과 좋은 일들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모든 장애와 불행의 원인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감사’로 과거의 좋은 일들을 충분히 음미하고 바르게 평가하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용서’로 과거의 일들을 용서하고 또한 용서받으며, 과거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약화되면서 좋은 기억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크리스천도 아니며, 물론 성서학자나 신학자들은 더욱 아니다. 과학적인 검증을 통하여 행복은 감사와 용서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감사’와 ‘용서’는 성서의 중심사상이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이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사도 바울은 강조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