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 받고 신앙생활 결실 맺어

 

서울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방학엔 집으로 돌아갔다. 엘렌과 난 여름방학이면 몇몇 학생들과 그들의 시골집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국문화를 배우고 그들을 좀 더 알기 위해서였다. 즐거운 기억이 많았지만 경상도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한 학생이 갑자기 마귀에 사로잡힌 사건도 있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탄과 마귀의 능력에 대한 기독인의 권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학생은 부산의 바닷가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경찰관과 싸움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주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엘렌과 난 인간적인 사랑과 노력만 해줄 수 있었다. 성령사역이 필요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모든 크리스천과 특히 지도자들에게 성령세례 받기를 강권한다.

 

서울대 공대에서 보냈던 사역의 시간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우리를 강하게 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하루 15시간 이상 선교활동을 했지만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곤고함이 있었다. 1971년, 한국에 온 지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변화를 위한 ‘여백’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년간 미국에서 재충전을 하고 오기로 했다.

 

목사나 선교사가 일이 잘 안 될 때 하나님께 먼저 구하기보다 공부하기로 쉽게 결정하곤 한다. 공부를 더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서다. 나 역시 안식년 동안 선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물어오셨다. “너는 누구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느냐?” 그 말씀에 순종해 결국 공부는 내려놓게 됐다.

 

엘렌과 나는 72년 1월 같은 날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았다. 10년 동안 메마른 신앙생활을 한 후에 주 안에서 40년 동안 열매 맺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호 14:8)고 말씀하셨다. 성령세례는 모든 열매를 만들어 내시는 주님과 친밀하게 되는 문을 열어 주셨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의 ‘예수운동(Jesus Movement)’ 모임에 엘렌과 참석했다. ‘예수운동’은 이름 그대로 ‘오직 예수!’라는 원초적인 신앙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부흥운동이었다. 장로교에서 성장한 난 교회에서는 배운 일이 없었던 ‘성령세례’라는 생소한 용어를 그때 접하게 됐다.

 

모임의 학생들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필요하면 기도를 부탁하라”고 했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10년 동안 선교를 했지만 결실이 없어 얼마나 막막했는지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러나 당시 50여권의 성령에 대한 책을 읽고 성경을 다시 읽으며 성령을 사모하기 시작했다.

 

20명 정도 모여서 성경을 읽었는데 학생들은 마치 연인한테 편지를 읽는 듯 신중하고 열정적으로 읽었다. 모임에서 병 고침의 기적도 많이 일어났다. 다리 길이가 다른 사람의 다리가 신기하게 똑바로 맞춰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결국 그 모임에서 우린 기도받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온몸이 뜨거워졌다. 목자가 어린 양을 안은 것처럼 껴안아주는 듯했다. 그리고 “너는 나의 것이다, 방해되는 것 모든 것을 제거하고 널 쓰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때 누군가가 “너의 집은 찬양의 집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것은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우리 집이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의 시작이 되는 것으로 성취됐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