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하나님은 우리 모자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담당 의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구멍난 오른쪽 폐는 칼을 대지 않고도 말끔히 치료해 주셨다.

노모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시면서도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 않으셨다. 아들보다 늦게 예수를 영접했지만 믿음의 깊이는 측량할 수 없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통해 하나님은 육이 죽고 영이 사는 법을 가르치셨다. 기도하는 법, 성경 읽는 법, 아픔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고(hope against all hope)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이 무엇 이었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소망이란 장밋빛 꿈이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도 놓지 않는 강한 믿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바울이 가난과 궁핍과,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했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바울의 고백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지키는 믿음의 존재론적 선언이 되게 하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그분 앞에 발가벗겨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왜 나만 이런 시험을 당하는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고 우리와 같이 고통에 참여하신다. 이 세상을 아무 흠 없는 낙원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의 전능의 막대기를 휘두르시기보다 당신 스스로 연약해지시고 겸손해지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고통을 말씀만으로 위로하신 게 아니라 온몸으로 막아주셨다. 거룩한 참예는 불멸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지금도 나는 끊임없는 육신의 나약함에 노출되어 있다. 남들이 다섯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나는 한 계단에 겨우 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하고 느리지만 막강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이 세상이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임을 항상 깨닫게 하신다. 또한 이 땅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위를 보고 사는 법을 일러 주셨다.

혹독하게 아프고 나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의미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명예와 자유로부터도 그렇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도 외에는 모두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나팔꽃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희망의 목마름 속에서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우리 영혼 속에 뿌리박힌 하나님의 본질을 찾아 전진하는 여정이다. 무지하게 고독하고 외로웠지만 그 때마다 보이지 않는 형제들이 내미는 사랑의 버팀목이 용기를 줬다. 그래서 난 눈물의 바다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그리운 서울대 캠퍼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역경의 열매] 김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