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새벽까지 무섭게 이어지던 천둥번개와 폭우가 거짓말처럼 가셨다. 말끔해진 하늘 아래의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어느새 역대 월드컵 응원전, 촛불 집회보다도 많은 인원이 광장과 광화문, 남대문 일대까지 가득 메웠다. 어떤 요구나 주장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어서도 아니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으로서, 내 교회 내 가정의 틀을 벗어나 한 목소리로 시대와 세계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15일 오후 3시30분 서울 시청 광장 특설 무대에서 ‘한국교회 8·15 대성회’가 열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처음 제안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주요 교단 및 연합기관들이 수 개월간 한 마음으로 진행해 온 결과가 드디어 세상에 드러났다.

한국 기독교인의 저력은 과연 대단했다. 지방과 해외 행사는 따로 열려 서울과 수도권 일대 교인들만 모였는데도 60만여 명 이상이 모였다. 시청 앞 광장은 주요 순서자와 성회 관계자들만으로 꽉 찼다. 광화문을 넘어 남대문까지 교회 단위로 모여 앉은 사람들은 불편한 자리와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전광판 중계를 통해 함께 찬양하고 기도했다.

다문화 가족들의 각 나라 전통을 대표하는 공연, 북한 민속 예술 공연, 타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행사의 중심은 말씀과 기도였다. 1980년대 이후 맥이 끊어진 대형 말씀·기도 집회를 부활시킨다는 것이 이번 행사의 주된 취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설교가이면서 일제시대를 경험한 세대라는 이유로 주 설교자로 선정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8·15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8·15를 맞아 100만 성도가 모여 한국 기독교의 저력을 북한과 온 나라에 나타냈습니다. 교회는 오늘처럼 하나님 앞에서 항상 함께 기도하고 힘을 모아 나아가야 합니다.”

이밖에도 이동원(지구촌교회) 목사가 ‘해방에 대한 감사와 사명’에 대해, 정성진(거룩한빛광성교회) 김학중(꿈의교회)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등 차세대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각각 ‘생명’ ‘희망’ ‘평화’에 대해 메시지를 전했다. 세 차례의 합심기도 시간을 통해 참가자들은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평화, 국가 지도자, 지구 공동체 등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했다.

NCCK 권오성 총무, 한기총 김운태 총무, 구세군 전광표 사령관, 기독교대한감리회 신문구 감독,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손인웅 대표회장 등이 공동 낭독한 ‘한국교회 8·15 선언’은 한국 교회의 회개와 반성을 담고 있었다. 한국 교회가 세계적인 성장을 기록하긴 했지만 ‘역사적 사회적 책임이 부족하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다’ 등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온 데 대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여러 번 분열하였고 예언자적 사명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기주의와 물량주의에 치우쳐 신자의 윤리적 책임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뉘우치며 회개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창조질서를 회복하겠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겠다” “교파주의를 극복하겠다” “노숙인 장애인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탈북자 극빈층 다문화가정 등 약자와 함께 하겠다” 등 다짐을 사회에 전했다.

일본 교회 대표를 초청해 식민지 시대 일제가 범한 폭력과 수탈에 대해 죄책 고백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순서를 성회 중심에 배치한 것도 앞으로 한국 교회가 역사 책임에 직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기독교인 자원봉사자 양성을 위해 전문 교육을 수료한 ‘자원봉사자 섬김이’ 815명이 ‘섬김과 나눔 선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회를 마무리하며 김삼환 대표대회장(명성교회 목사)의 인도로 전 참석자가 “앞으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기독교인의 사명을 다 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렸다. 이어서 울린 ‘만세’와 ‘할렐루야’ 삼창이 도심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황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