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1978년 서울 서초동에 사랑의교회를 개척하고 제자훈련 목회로 수천명의 평신도 리더가 함께하는 교회를 일궜던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는 확실히 예수의 제자 삼는 일에 ‘미친’ 목회자였다. 한국교회의 영적 거인 중 하나인 옥 목사가 폐암으로 투병 중이다.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며 그가 갖고 있는 고통에 대한 견해는 무엇일까. 고통에 관련된 3권의 저서(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고통에는 뜻이 있다, 나의 고통 누구의 탓인가)를 통해 그가 병마의 상황에서도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찾아본다.

 

◇제자훈련에 미쳐라=그는 제자훈련에 미친 광인론(狂人論)을 주창하며 ‘C(그리스도에 미친 인간)=B(신념)+E(열정)+V(비전)’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 옥 목사는 아침 7시에 교회에 나와서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가는 숨 가쁜 목회 여정을 걸어왔다. 여름 휴가를 받아도 교회에 나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며 훈련교재를 만드는 데 시간을 썼던 그였다. 자연스레 사랑의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일궜고 85기까지 1만8380여명이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를 받았다. 그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제자훈련이라는 신앙 전통을 확립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1989년 후반 심신이 지쳐 탈진상태에 이른다. 그는 극도로 몸이 쇠약해진 상황에서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세미나를 인도했고 결국 쓰러진다. 12년 만에 가진 안식년조차 위장병과 불면증, 어지럼증, 의욕상실 등을 겪는다. 옥 목사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폐결핵을 앓았던 전력이 있다. 2003년 은퇴 후 1년 뒤 폐암을 발견을 하고 수술을 했지만 지난해 말 재발한 상황이다. 그가 ‘제자훈련 열정 40년’이라는 책에서 병마로 고통을 당하며 동료 교역자와 평신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고 말했다. “바쁠수록 조심하십시오. 유명해질수록 정신을 차리십시오. 마귀는 우리보다 지혜롭습니다.”

 

◇고통의 이유를 생각하다=사실 수십년 목회를 하면서 그가 가장 어렵게 생각한 것은 고통에 관한 성경적인 명확한 해답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목회와 병이라는 두 가지 ‘거인’ 앞에서 씨름했다. 이처럼 고통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썼고 고통으로 멍이 든 형제들과 함께하기 위해 애썼다.

 

“고통이란 암세포는 예상보다 훨씬 깊고 넓게 생의 전반에 퍼져 있어서 쉽게 제거할 수 없는 난치병이다. 그래서 고통을 안다는 것은 곧 인생을 안다는 말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을 모른다면 그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중)

 

“좋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려고 힘쓰는 형제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이 자신의 고통을 바로 보고 대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게 되었다.”(‘나의 고통 누구의 탓인가’ 중)

 

그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빠져 있는 고통의 심연은 죄악의 심연만큼 어둡고 깊어서 그 밑바닥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고통을 논했던 것은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고통의 심연 속 욥을 찾다=병마라는 고통의 심연에서 그가 찾은 것은 욥이었다. “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참으로 욥을 이해하거나 본받는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통의 해답을 찾으려고 욥기를 폈다가 실망하고 일어서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앞뒤 한 두장 정도는 쉽게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나머지는 절대로 수월히 읽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욥의 이야기를 빼놓고는 성도가 겪는 고통에 대해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

 

그는 고난을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정의하고 고통을 통한 자기 자녀의 유익을 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고통을 아시는 분이며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하시는 분이며 고통을 통해서 자기 자녀를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는 예측을 불허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순수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완전한 위로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안에 정죄가 없다는 복음을 선포했다. 그는 ‘고통을 죗값으로 보지 말라’며 형제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함께 씨름하는 사람이 되자고 독려했다. 그리고 고통을 예방 수단으로, 치료의 과정으로 볼 것을 권면했다.

 

◇고통을 제대로 보라=그가 깨달은 것은 고통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인이라고 반드시 고통에서 면제받지 않으며, 죄인이라고 반드시 고통의 손아귀에서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중을 만의 하나라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지켜보며 그의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고통을 완전히 면제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였고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셨다고 했다(전 7:14). 그러므로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대상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이다. 우리가 번민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고통이 주는 독소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는 데 있다고 확신한다.”(‘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중)

 

그가 지금도 병상에서 외치고 있을 고백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섭섭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나의 고통 누구의 탓인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