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처음으로 카슈미르 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어서 관심이 많았던 데다 한 선교사로부터 사역의 가능성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긴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장소다. 이는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란 말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카슈미르 분쟁의 한 단면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을 경험했다. 사건은 카슈미르에서 돌아오던 길에 터졌다.

잠무역에서 델리로 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 앞서 역에 들어갔다. 기차를 타려고 육교를 건너 2번 플랫폼으로 가는데 1번 플랫폼으로 다른 기차가 한 대 들어오면서 갑자기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독립 반군들이었다.

나는 총성이 들리자마자 그곳에 서 있던 다른 기차에 급하게 올라탔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죽어갔다. 기관총 소리가 수십 발 들렸고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졌다. 어떤 사람은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어떤 사람은 부상을 입고서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순식간에 기차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반대편에서도 반군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총격전은 30여분 동안 이어졌고 내가 있던 2번 플랫폼으로 총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너무 무서워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동시에 쉽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땅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총격 소리가 다행히 잠잠해졌다.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상황이 끝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서 들것에 실려 나갔다. 내가 타려고 했던 기차는 1시간 후에 도착했고 무사히 델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델리로 돌아와 아침 신문을 보니 그날 잠무역 총격 사건으로 16명이 죽고 50여명이 다쳤다고 나와 있었다. 한 달 동안 잠무역은 폐쇄됐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온 것에 감사했지만 아직도 카슈미르가 분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카슈미르는 분쟁 때문에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없는 땅이 됐고 아직도 1300만명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카슈미르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아졌다.

암 선고를 받고 한국을 떠난 지 8년이 됐다. 3년을 넘기지 못할 거란 의사들의 말은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3년 시한을 떠올릴 때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확인할 때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서일까. 3년 시한은 내 존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선교는 전적으로 하나님 일이다. 나는 없고 주님만 있다. 나 혼자 선교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없이도 하나님은 선교하신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행보를 따라갈 뿐이다.

더 많은 선교사가 파송되기를 바란다. 특히 북인도 같은 미전도 지역에 말이다. 이유는 하나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송이 힘들면 기도만이라도 해달라고 감히 부탁드린다. 선교를 위한 기도 한마디, 간절한 부르짖음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 기적의 목격자다. 하나님의 평강이 교회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란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바울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