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종과 다른 여종,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는 말을 하고

이에 베드로는 강력 부인 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가 그리도 부끄러웠나요?

예수로 인해 내가 피해볼까 두려웠나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세상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을 언급만 해도 제자인줄 압니다.

조금만 예수이름으로 사랑해주어도 제자인줄 압니다.

그래서일 까요, 베드로에게 사랑의 향기가 풍겨 나왔을까요?

은연중에 주님의 향기가 나왔을까요?


세상이 베드로에게 제자임을 알려줄 때

어쩌면 그의 반응[부인함]은 사람으로서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과 같이 닭이 세 번 울자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회개하는 모습을 봅니다.


실패와 성공이 우리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상황에 예수의 말씀이 생각이 나게 되고

나의 삶은 기쁨의 삶임을 확인 할 것입니다.

나를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제 '명함'과 '메일'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직장일로 자주 명함을 건네주는데

정부기관의 점검을 받는 중에 명함을 주며 한마디 들었습니다.

'명함에 교회 다닌다는 표현을 넣으시다니 독특하십니다.' 라고 말이지요.


그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너무 기뻤습니다.

[직장상사에겐 혹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편함도 느낌!]

그래서라도 더욱 기회가 오면 전하고 싶었구요.

그래서 그들을 파악하기 위한 말 건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모두 돌아가는데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제겐 너무나 안타까운 하루였습니다.

그날 저희에겐 과태료도 부과되었고 지적도 많았습니다.

그 일은 그리 부담이 없었지만 전하지 못함에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생각난 것은

제 메일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메모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연락처를 확보하여 문자메세지와 메일을 통해

당일의 고마움을 표현하며 간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전하였습니다.

직접 전할 시간을 갖지 못하였지만, 그들의 반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일 후 저에겐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음에는 꼭 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지요!


일의 잘됨과 안 됨이 중요치 않고 오히려 주님께선 나와 함께 계시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하여주심을 확신합니다.

일의 잘됨과 안 됨이 기준이 된다면

저는 이미 주님의 선택에서 멀어졌겠지요.

하지만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을 주셨을 때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야 합니다.

예수의 말씀이 나를 살릴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경험한 지체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들과 동일한 마음을 품길 원하며

동일한 은혜로 새로운 시작이길 기대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훈련생과 훈련순장을 이 기간에 특별히 사용하여 주시고,

기쁨으로 받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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