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악한 질문(마19:1-8)

2011.08.18 11:27

박덕순 조회 수:1601

 

바리새인들의 이혼에 대한 질문

그때 당시나 지금이나 이혼은 뜨거운 감자인 핫 이슈.

 

그런데 그들은 정말 몰라서 질문한 것일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만약  이혼을 반대하면 예수님은 당시 재혼한 헤롯왕의 심기를 건드려 위험해질 것이고

반대로 찬성하면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이혼에 대한 정당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에 대해 나름의 정당성을 찾고자 사람을 찾아가 질문할 때가 있다.

위로를 구한답시고 말이다.

 

또 바리새인들처럼 악한 의도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아프리카의 굶어죽는 애들도 지옥 가나요?.... 이순신 장군은요??"

 둘 다 완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어떻게 대답할까?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이혼에 관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성경적인 결혼관이었다.

이혼은 절대 안된다.

그럼에도 마지못해 이혼증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참뜻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신다.

결국 이혼이 문제가 아니라 완악한 마음이 문제란 거다.

 

어제 산하와 강돌이가 싸웠다.

요지는 산하의 질문이었다.

"너 숙제 다 했어? 또 답안지 베낀 건 아니지?"

 

틈을 주지 않는 완악한 태도는 상대를 시험 들게 만든다.

뭐가 잘못됐냐고 따지지 말고

내가 얼마나 완악한 마음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실수하지 않고 말씨 야무진 산하보다 말주변 약한 강돌이를 변호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찌보면 하나님 마음일지 모르겠다.

 

남편과의 화평치 못한 관계,

시댁과의 갈등,

직장 동료... 공동체..... 모두 마찬가지다.

누가 맞냐를 따지지 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에 집중한다면

설령 마음 떠난 남편, 시어머니, 직장동료일지라도 우린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완악한 마음 안에는 그 어떤 성령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다.

 

산하는 방에 들어가 잠시 기도한 후 다시 나와 강돌이에게 사과했다.

강돌이도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지 못한 자신의 굼뜬 행동을 반성했다.

역시 싸울 일 없는 외동이보다는(독신)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조종하고 협력하면서 좀 더 사회성 있는 자식으로 커 가는 것이

창조질서에 맞다고 본다.

 

하나 더 나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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