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왜?

헤로디아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았을까요?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4절]

복음과 연관이 있을까요?

세례요한은 구약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인한

신약의 시작을 증언하는 것이 주 임무였을 것입니다.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3]


헤롯은 이방인에서 유대인으로 자처한 사람 이었습니다

율법(레 18:16;20:21)에는 형제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은

그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뿐 입니다.

율법을 어긴 헤롯에 대해 요한은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방인에서 유대인으로 자처한자가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세인 사두개인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세례요한은 자처하였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오셨습니다.

자기의 잣대에 맞춘 율법 적용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이에 요한의 분개함을 표현하였지만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요한의 일과 예수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헤롯은 직접 시인하고 있습니다.[1,2절]

요한의 일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눅 7:28]

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요한과 예수님은 유사점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도전을 받습니다.

요한의 죽임의 근본적 원인은 율법을 어긴 헤롯을 논하였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예비하며 천국이 가까웠음을 선포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요한과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요한의 한일과 예수님의 한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동일합니다. 

 

그래서 헤롯은 당황하는 것입니다.

 

씀에 따라 준비된 요한이었으며 일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고초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인간적으로는 참 불행한 일이라고 다들 말합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대화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두려운 것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영생을 소망하는 대화법을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 죽는 것이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나는 안타까워하는 미련을 가지고 있네요.

버려야겠습니다.


요한은 죽었지만 예수께서 일하십니다.

예수께서 죽었지만 성령께서 우리로 일하게 하십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정하여진 일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