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남자(3:13~18)

 

나에게는 비자금이 있습니다.

내 딴에는 아내 모르게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눈치 십 단인 아내가

얼굴에 쓰여있는 나에게 속을 리 없습니다.

 

책을 좀 과하게 사는 것 빼고는

순원들과 밥 먹는 것과 약간의 품위 유지뿐인

내 비자금의 용도를

번데기 장수 아저씨도 아는지라(~)

아내가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이지요.

 

일산과 동해는 삼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백두산부터 지리산을 잇는 천 미터 이상의

고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

하늘에 있는 구름도 걸려 넘어져 소식을 모르는데

동해의 내 생활을 아내는 손 바닥 들여다보듯이

샅샅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니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케 하신 것이 확실함)

남자에게는 자신만의 돈이 있어야 한다며

비자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 혹시 이건 함정?)

 

처음생각엔 비자금이 있음을 들키면서도

아내에게 비자금을 타내는

총명(?)이 넘치는 사람인 줄로 착각했는데

 

남편의 비자금을 알면서도

비자금을 더 만들어 주는 아내의 뱀 같은 지혜에

그것은 물에 빠진 식빵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삶의 짜릿함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아내 몰래 쓰는 그 쏠쏠한 재미를

못 느낄테니 말입니다.

 

나에게 더 이상 비자금이란 딴 주머니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난 비자금도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바보 남자입니다.

(2011.04.3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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