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즐)거워함 -> 하즐

 오늘 일정을 보니 새벽기도와 큐티 나눔, 심학산 등산,

실천사역, 훈련원 참 빼곡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즐거워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즐거워하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주님이 십자가 지심에 대한 불순종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지심으로 나는 죄인 됨을 알 수 있었고

그 결과로 믿음이 있음을 의로워졌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동사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반듯이 순종해야만 하는 것을 전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 삶 주변에는 환난과 고통과 어려움과

견딜 수 없는 다양한 사건들이 득실득실 거립니다.

믿지 않던 과거 같았으면 안달복달 하며 이리저리 부산했을 텐데

감사하게도 이러한 일에 대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동사형이라고 주님은 나로 운동력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주님이 비추어주신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내 만족이 아닌 주님의 만족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일대일을 하며 훈련순장으로 섬기며 깨닫게 된 것은

주님의 일이 거룩하다는 것과

그 모든 것을 나로부터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대일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결단합니다.

훈련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결단합니다.

세상은 많은 것으로 변화합니다. 우리에게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우리의 변화가 세상적인 것으로만 멈추어지면 안 됩니다.

주님이 나의 옛 자아를 새로운 자아로 형성시켜주신

그 순종함으로 변화되는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나를 위해 대속하신 이유를

나로부터 확증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나에게 많은 일들이 준비되어 있는 이 하루를 주심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밖에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새벽기도로 모이는 교회지체를 만나 함께 기도하니 기쁘고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지체가 있어 기쁘고

연약한 육체를 지체들과 함께

운동으로 세포들을 움직이게 하시니 이 또한 기쁘고

영혼구원을 위한 발걸음으로 그들의 돌아옴을 보니 기쁘고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던 훈련원의 지체들을 보니 기쁠 것입니다.


제가 원래 얼굴에 웃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일(코미디) 좋아하는데

남들이 웃겨주면 저는 그냥 자지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표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즐거워하라고 하시니

즐겁게 하는 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주님 영광 바라봄으로 하루가 기뻐지는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하루가 되길 기대합니다.

 

다가오는 하루의 시간 시간을 기뻐하는 순간이 되도록 

말씀의 유머를 하나 배워서 나누어 줘볼까 합니다.

그런데, 말씀에도 유머가 있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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