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사세요?”(신11:1~12)


에덴이 가나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이들이 에덴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스라엘에게 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에덴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에덴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입니다.

그것도 동산 가운데에 계십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아담이 늘 볼 수 있는 곳에 있었고,


그것을 볼 때 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졌기에


다른 피조물이 봐서는

하나님과 별로 차이가 없는 아담은,

자신이 피조물인 것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사람과 늘 함께 계시는 곳이며

하나님과 사람의 구별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에덴에서는

하나님의 일과 내 일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내 일이 곧 교회 일이며

교회 일이 곧 하나님의 일 이었습니다.

내 일과 하나님의 일이 구분되고

세상일과 교회일이 구분된다는 것은

내가 에덴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죄로 인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결과 무제한의 자원 속에 살던 아담이

스스로 열매를 맺고 얻어야 하는

자원의 제한에 갇혀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로운 삶의 결과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자유로부터의 제한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갇혀버리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스스로 땅을 파서 파종해야 하고

부족할까봐 물을 가두어 놓아야 하며

때를 따라 걱정하며 공급해야 하는 곳입니다.(10)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이

건너가 차지하게 될 가나안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입니다.(12)


다른 신, 남의 신 눈치 볼 일 없으며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곳에 머물고 있는 여호와의 땅입니다.(12)


그곳이 바로 에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에덴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갇혀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슨 말이든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것을 모두 가져다 쓰기를 바라시는

그런 아들의 관계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고

나는 하나님만을 풍성히 누리는 곳,

그곳이 바로 에덴입니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하나님의 풍성함과 임재를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에덴입니다.


오, 주여~

(2011.03.29.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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