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족해(2:19~30)

 

바울은 에바브라디도의 헌신을 통해

빌립보 교회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에바브라디도를 소개하면서

이와 같은 자를 존귀히 여기라고 칭찬합니다.(29)

 

그러나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을 섬긴 그 일이

빌립보 교회가 하여야 할 부족한 것을

채운 일이었다고 합니다.(30)

 

바울을 섬기는 일이

교회의 일 이었다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바울이 받은 섬김이 조금 부족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빌립보교회의 섬김이 부족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빌립보 교회의 섬김은 부족했지만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에게 한 섬김으로

그것을 채웠다는 말일까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섭섭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온전하시듯

그 분의 일도 온전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이 다 이루신 온전한 일을

여전히 그 분을 대신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대신해서 섬긴 에바브로디도의 일이

교회의 부족한 것을 채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은 고난입니다.

고난이 없이는 부족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무한한 고난의 가치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또 세상이 신뢰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있는 곳이 지옥이지만

이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그곳도 역시

지옥일 것입니다.

 

고난이 내 소명의 일부임을 아는

소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9:15~16)

 

그리스도의 고난이 내 고난이 된다면

내 지금의 모든 고난도 역시

그리스도의 고난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인임을 천명하고

그리스도의 사자로 사는 일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입니다.

(2010.02.19.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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