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내가 어느 곳에 가든지 만나는 사람은 다투던지 사랑하던지 간에 복음의 대상입니다.

 

그와 조우하게 된 것은 복음밖에 연관성이 없습니다.

 

내가 일을 잘 마친다고 해서 그 사람과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가 그와 다투었다면 그와 다시 좋은 관계로 만날 확률도 업습니다.

 

매일 이해관계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이순간이 아니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복음화하길 원합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원합니다.

 

 

 

 

업무관계로 심하게 다투었던 동료 직원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회사 내에서 서로 회피하며 다녔습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업무 때문에 그 동료 직원과 말을 안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느 땐가 동료직원에게 개인적인 고민거리가 생긴 시기가 있었습니다.

 

고민거리를 저에게 이야기 하였는데, 제가 휑~~~ 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으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아직까지 구원의 확신은 없지만, 때로, 예전과 같은 성품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존재의 이유를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그 일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해보고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는 것보다

 

전도해보고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이 믿는 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는 전도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

 

내 삶이 아직 주님께 확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앞서고 주님은 항상 구석에 자리 잡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열정을 주신 분이 주님이라면, 내 삶이 명확하다면,

 

주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리로, 저리로, 우왕좌왕 하는 것은 정해진 인생길에 손해가 됩니다.

 

주님의 계획은 한 사람()를 통해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시길 원하십니다.

 

세상의 지위고하는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낙을 누린다고 해서 복음이 잘 전파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실천력있는 믿음의 지체를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주님의 복음은 이렇게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육을 갑니다.

 

그곳에는 한 클라스가 모이겠지요.. 짬이 날지 안날지 모르겠지만,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이런 나의 발걸음도 보탬이 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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