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세요!(대하24:15~27)


산 정상에서부터 중턱쯤 내려왔는데

핸드폰이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사진 찍을 때 빠졌나 싶어서

핸드폰 찾으러 다시 올라갔습니다.


처음 올라갈 때보다 더 빨리 올라갔지만

처음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고

처음산행 때 보다 두 배는 더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핸드폰은 정상에 없었고

내려올 때는 후회까지 해가며 내려왔습니다.


다행히도 잃어버린 핸드폰은 중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찾았지만

시간이 없을 때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정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모르는 길을 물어보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잘못간 것만큼 손해나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길을 갈 때는

물어보지 않고 그냥 가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물어보는 시간만큼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알고 있다고 하면서 물어보는 것은

확실히 알지 못한다거나 모르는 것입니다.


이미 가는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다르게 말 하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다보면

아는 길도 헷갈릴 수 있습니다.


요아스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적거장인 여호야다와 함께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존경하며 섬기던 여호야다가 죽자

자신에게 절하는 방백들의 말을 듣습니다.


섬기던 자에서 존경을 받는 자가 되니 교만해 집니다.

매일 같은 말만 하는 지겨운 여호야다와는 다른

엣지 있는 방백들의 세상 말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이미 아는 길을 가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이

귀를 닫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더 조심해야 할 것은 다른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미 아는 길 천천히, 물어보며 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마귀가 가만 둘 리 만무합니다.


방백들은 리더 여호야다가 한길만을 가는 것을 보고

고집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빨리 가서 따라가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아스에게 다른 길도 있다고 천천히 가라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자신과 나라가 가야 할 그 길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 때 어떤 풍요로움이 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미 알고 있었고 풍성한 길을 걷고 있었는데

또 다시 길을 묻고 있었으며

다른 길이 있다는 방백들의 대답에 솔깃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한 길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그 길은 또한 여호야다와 요아스가 걸었던 길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제시하셨고 예수님이 걸으셨으며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길을 가면 됩니다.


이미 아는 길 무엇을 물어야 하며

이미 보여주시고 가신 길 어떻게 가야 하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아빠와 손을 잡고 갈 때도 가는 것이지만

아빠가 아이를 한 번 안아주고 가는 것이

더 확실한 표증이 되듯이

내가 할 일은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세요 하며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아버지 손을 확실히 잡고 가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아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아버지 오늘도 안아주실꺼죠?

(2009.12.03.08:55)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