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사들, CBS서 세 후보 정책과 자질 놓고 열띤 설전  
  
이승균 seunglee@newsnjoy.co.kr
  

▲ⓒ뉴스앤조이 신철민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기독교 인사 세 명이 최근 기독교방송(CBS)에서 마련한 토론회에서 각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신의순 교수(새문안교회 집사), 부산 수정로침례교회 김기현 목사,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 등이 그 주인공. 이들 인사들은 순서대로 한나라당 이회창·새천년민주당 노무현·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사회는 CBS저널 진행자 박영근 교수가 맡았다. 이날 토론회는 기독교인들의 바람직한 대통령 후보 선택을 위한 나름대로의 잣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박영근 박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영근 : 먼저 각 후보들을 지지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신의순 : 이 후보를 알게 된 것은 1980년 중반부터다. 당시 이 후보가 재판관으로서 소수 의견을 지지하고 개혁적인 의견을 많이 내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오랜 세월 동안의 군부정치와 국론분열을 종식하고 국민통합을 이룰 민주적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컸다. 그런 국민들의 의지에 따라 김영삼·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실망만 주었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현란한 말장난이나 하는 정치전문가가 아니다. 국민들을 지역정치 볼모로 몰아가는 대통령도 아니다. 국민을 안심하고 편하게 할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이회창 후보다.

이 후보는 1989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된 후 대통령과 3김 씨 모두에 경고서한을 보냈고, 감사원장 시절 무기도입과 관련된 율곡사업 비리를 조사해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실체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또 국무총리 때는 각료 제청권을 포함한 내각통수권을 요구하다가 짧은 기간 내에 국무총리를 떠났다. 이 후보는 원칙과 소신을 지켜 살아왔고 약자 편에 서서 아픔에 귀 기울였고 권위에 도전해서 개혁에 앞장서왔다.


▲김기현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김기현 :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신학교 갈 때에 하나님께 '예수 팔아 밥 먹고 살지 않도록' 기도했다. 목사는 예수 팔아 밥 먹기 딱 좋은 직업이다. 목사는 '나를 팔아 예수를 사야' 한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에 함몰되어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의식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때가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떨어지고 노사모가 생기던 시기였다. 대학 다닐 때 노 후보에게 갖고 있던 관심을 유지하면서, 노 후보야말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지켜보게 됐다. 문화비평가 진중권 씨는 '현실 정치판에서 노 후보만큼 하는 것은 어렵다. 그 정도 하는 것은 진보적이고 혁명적이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노 후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현실을 너무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개혁하는 원칙과 소신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하종강 : 나는 권영길 후보도 물론 좋지만 한 개인이 아닌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다. 민노당을 지지하는 다른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노당은 '노동'이라는 단어 때문에 과격하다는 선입견을 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우리 나라 1,350만이라는 직장 생활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국민 대부분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다. 민노당은 대한민국 직장인들 대부분의 권익을 충실하게 대변한다. 민노당의 정책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먼 훗날이나 가능한 얘기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이 8.6%의 지지를 획득해 TV 토론회에서 3분의 1의 비중으로 자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나라가 진보한 것으로 본다. 앞으로 이런 행보를 계속하기 위해 인물이 아니라 정당정책을 보고 지지해야 한다.

박영근 : 대통령 선출은 똑똑한 사람 아니라 이 사회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을 뽑는 것이다. 각 후보들의 어떤 점이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킨다고 보는가.

김기현 :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닌 실질적인 삶과 말의 일치라고 본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과거 단절도 없고 원칙과 상식이 짓밟히고 왜곡돼 왔다. 정치도 정책이나 이성적 입장이 아닌 지역주의와 공천, 돈을 매개로 이루어져 왔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예수님 삶처럼 말과 예배와 삶이 일치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지역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는 부정에 앞장서고 국론분열과 지역주의 조장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많이 있다. 그런 점에서 노 후보는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부산에서 시장과 국회의원에 출마해 지역통합을 추진한 것은 물론, 국민경선과 단일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노 후보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한다.

하종강 :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오히려 권 후보에게 적당한 말이다. 감리교 교리 중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라는 부분이 있다. 교회는 모든 영혼을 구하면 살기 좋은 천국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혼이 거듭나도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살기 좋은 천국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 모순구조 개혁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제 그런 일을 정치에서 해보자는 것이다. 권 후보가 TV 토론에서 '한나라당은 부패 원조당이고 민주당은 부패 신장개업당'이라고 하자 노 후보가 '그렇지만 사장은 바뀌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장만 바꿔서는 문제는 해결 안 된다. 이제 회사의 틀을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구조에 체제를 바꾸는 시도를 해봐야 한다. 그런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는 권영길 밖에는 없다.  


▲신의순 교수. ⓒ뉴스앤조이 신철민

신의순 : 현재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경제정의 실현이다. 권력과 돈이 만날 때 부정부패가 발생한다. 앞으로 누가 이끌어 나가도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부동산 투기와 특혜, 불로소득은 원천 봉쇄해야 한다. 둘째는 국민통합이다. 국론분열은 불필요한 일에 국력을 소모하게 만든다. 지역갈등·세대갈등·이념갈등은 이제 정직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에 의해 해소돼야 한다. 셋째는 약자들의 권익 보호다. 예수님은 길 잃은 한 마리 양에게 더 관심을 가지셨다. 이 나라에는 무고하게 죽은 두 여중생의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이 연일 모여서 시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다음에야 소파개정 요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피의자가 검찰 청사에서 맞아 죽고, 영해를 지키는 국군이 북한군에 포탄에 맞아 죽어도 정부는 변변하게 대처하지 못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경제를 살리고 국민통합과 생명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이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박영근 : 이제 각자 질의할 시간이다. 한 사람이 나머지 두 사람에게 질의할 수 있다.


▲하종강 소장. ⓒ뉴스앤조이 신철민

하종강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선거 전략은 이 후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보다 김대중 정부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얼마나 자질과 자신감이 부족하면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기대서 표를 얻으려 하는 것인지 좀 이상하다. 이 후보가 현 정부 실정을 비난하는 전략을 그만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정책으로 바꿀 용의는 있는지 묻고 싶다. 또 노무현 후보는 새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큰 문제 중 하나인 재벌을 대표하는 사람과 손잡고 어떻게 새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신의순 : 이회창 후보가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는데,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후보는 경제정의실현과 국민통합, 약자보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후보는 경제정의실현에 있어서 법을 준수하고 물질을 탐하지 않는 청빈을 평생 실천했다. 또 국민들은 이 후보가 한나라당 총재로 있던 지난 봄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현 정권에 대해 심판했다. 민심이 민주당과 현 정권 떠났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단일화라는 편법으로, 그것도 여론조사 방법을 통해 후보를 단일화해 이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통합을 위한 방법은 아니다.  

김기현 : 하 소장의 지적은 적절한 것이다. 노 후보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새 정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일화는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노 후보가 최선을 다한다면 단일화하지 않기를 바랬다. 정몽준 후보와 노 후보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새 날이 밝기 위해서는 새벽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새 정치에도 새벽은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인을 향한 지지와 정서는 쉽게 변한다. 노 후보가 원칙과 이상 신념을 끝까지 지지해야 하지만 조금만 실수하면 금세 되돌아 서버리곤 한다. 그런 현실들이 단일화를 가져온 것으로 본다. 그런데 노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서 새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 아니면 안 된다' '지역 사람들이 밀어주니까 포기하지 않겠다'는 식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포기하겠다'는 자기포기를 통해서 단일화를 이루었다. 이것은 역대 정치인들과 크게 다른 모습이다.

신의순 : 노무현 후보가 원칙과 정도를 걸어왔다고들 한다. 그러나 민주당 초선의원 정풍 운동 때 노 후보는 동교동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이런 점에서 참신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본다. 또 권영길 후보는 직장인 전체가 아니라 노동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기현 : 한 두 가지 작은 사례로 노 후보에게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노 후보는 전체적인 시각에서는 일관되게 지역타파와 국민통합의 정치를 추구했기 때문에 충분한 일관성이 있다고 본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하종강 : 솔직히 민노당은 아직 노조조차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원 중에서도 적은 수만 민노당에 가입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 노동자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은 민노당 밖에는 없다. 민노당은 노조를 위한 단체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체 직장 생활 노동자를 위한 당이다.

김기현 : 이번 대선에서 제일 좋은 구도는 민노당이 약진하고 노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노당과 민주당이 상호비판은 좋지만 좀 지나친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민노당이 혹시 노 후보 비판을 통해 반사이익을 챙기면서 결과적으로 이 후보를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이회창 후보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이중잣대라는 느낌이 든다. 이 후보나 한나라당 자신이 과연 그렇게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종강 : 민노당은 기존 정치와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후보가 당선되면 민노당도 결국 손해라는 지적을 듣기도 한다. 권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그런 갈등을 다 느낀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은 바로 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노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보다 민노당이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 득표를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권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노당 선전이 노 후보에게 반드시 불리하지는 않다. 지금 토론을 보면 이 후보 강세 진영에서 노 후보보다 권 후보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이 후보에게 투표하기 싫고 노 후보도 선뜻 지지하기 싫은 사람이 권 후보에게 몰리고 있다.

신의순 : 민주당이 이 후보의 병역비리를 들고 나왔는데, 이 문제는 97년 대선 때 이미 검증이 끝난 사안이다. 그런데 김대업이란 인물을 내세운 흑색선전에 의해 이 후보의 이미지가 엄청나게 훼손됐다. 과연 이 후보가 한나라당 총재가 된 이후 어떤 부패가 있었는가. 그리고 민주당 정권의 수많은 게이트와 이 후보와 관련된 비리가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가.

박영근 :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아쉬운 점과 타 후보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뉴스앤조이 신철민

김기현 : 민주당은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변화되지 않는 모습 때문에 노 후보 지지를 꺼리는 유권자가 많은 점이 아쉽다. 그리고 권 후보는 실제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주장하는 것들이 점진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선공약에 보다 신경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 후보는 정직과 대쪽 이미지, 그리고 소수 입장을 지지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들이 너무 많이 훼손된 듯해 아쉽다.

신의순 : 이 후보는 정직과 대쪽이 상징이지만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 정치적으로 대중적 이미지가 부족하고 측근이 없고 계보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노 후보는 소탈하고 격의 없는 대인관계와 대중연설에 능하고 열성 추종자들이 많은 점이 좋다. 권 후보는 정책 차별화에는 성공했지만 단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종강 : 권 후보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불만은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치를 효과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이 후보는 좋은 대쪽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자칫 제왕적 권위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노 후보는 국민들의 가슴으로 다가오는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머리로 정치를 해야 할 시기다.
  
2002년 12월 11일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