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선

2022.12.11 09:04

박상형 조회 수:3

하나님의 최선(2:1-11)

 

 

1. 지혜로운 일을 알기 위해

 

지혜로운 일이 어떤 일인지를 알기 위해선

지혜롭지 않은 일이 어떤 일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

 

 

지혜롭지 않은 일은 쾌락을 목적으로 사는 일이다.

전도자는 웃음, 포도주, 섹스같은 쾌락주의를

탐닉했었다고 말한다.

 

 

지혜롭지 않은 일은 소유를 목적으로 사는 일이다.

전도자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소와 양떼를 소유했었고

누구보다도 더 많은 보물과 처첩까지 소유했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 소유의 목적이 자신을 위해서였고,

그 소유의 목적이 다른 남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였었다고 하니, 나라의 정세는 어떻게 돌봤는지 신기하다.

 

(8)금은과 왕들의 보물과 여러 지방의 독특한 보물을

나 자신을 위해 모으기도 했다. 노래하는 남녀들과

남자들이 좋아하는 첩들도 수없이 많이 거느렸다.

 

 

2. 최고를 위하여

 

솔로몬은 최고를 위하여 살았다.

어떤 왕들도 갖지 못한 소유를 가졌고

어떤 왕도 가지지 못한 보물과 노비 처첩까지 거느리며

어떤 왕보다도 창성한 사람으로 살았었다.

 

(9)이렇게 나는 나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크게 세력 있는 사람이 돼 남부러울 게 없었고

지혜도 여전히 내게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약점은 최선을 못 본다는 것이며

최선이 무시된다는 것이다.

금메달 앞에서 은메달이 무시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많은 최고의 것들을 가지고, 이루고도

아들 때에 나라가 남북으로 쫙 찢어지는 것을 보면

솔로몬의 최고가 후대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대에도 영향을 줄 수 없는 최고는 최고가 아니다.

 

 

3.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도 그것이 적용된다.

하나님은 최선을 말했는데 사람들이 최고를 만들어냈다.

 

 

요한복음의 성령은 예수님의 새 계명인

사랑을 도와주는 보혜사 성령님이시며

사도행전의 성령은 증인을 도우시는 성령님이시다.

 

 

증인은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사랑이 빠진 증인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다.

 

 

교회는 증인이라는 최고를 따라가느라

사랑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교회는 행복이라는 최고를 쫒느라

이웃사랑이라는 최선을 놓치지 않았는가?

 

 

솔로몬은 최고를 찾았지만 예수님은 최선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최선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넘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은 그 사랑이었다.

 

(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솔로몬의 최고가 아니라 예수님의 최선을 따라가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2. 12. 11.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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