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대와 나의 기대

2022.07.21 07:44

박상형 조회 수:9

아버지의 기대와 나의 기대(고후8:1~15)

 

 

하나님은 자녀인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실까?

하나님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과 그 이유가

내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그것과 같은 것일까?

 

 

1. 주님의 기대

 

주님이 당신의 백성인 유다에게 기대하신 것은 공평과 정의였다.

 

(5:7)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공평과 정의의 당시에 하나님을 아는 특권이 이들에게만 주어졌기에

그분의 백성이 된 유다는 멋지고 아름다운 공평과 정의가

그들 자신의 삶의 방식이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공평과 정의를 살육과 울부짖음으로 바꾸어 버렸다.

저들은 주님의 기대에 부흥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대를 구겨버렸다.

 

 

자신에 대한 주님의 기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녀의 권리를 남용한 결과였다.

 

 

2. 바울의 기대

 

바울도 고린도교인들에게 기대를 했다.

그 기대는 그들이 자신의 편지를 읽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의 기대에 부흥을 했고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7:7b) 내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또 나를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그가 전해 줄 때에, 나는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연보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도 알기를 기대했다.

 

(6)그러므로 우리는 디도에게 이미 여러분 가운데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성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7)여러분은 모든 일, 곧 믿음과 말씀과 지식과 모든 열심과 우리에 대한 사랑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로운 일에도 풍성하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고린도 주변의 마케도니아 교회에서는 바울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을 드리며 또 연보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5)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우리에게 바쳤습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고린도교인들이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까지 기대했었다니 놀랍다.

 

 

바울이 이런 기대를 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을 확신했었기 때문이며

신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기대를 해야 할 까?

 

믿음의 기대는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풍성함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할 것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해야 할 기대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그 삶의 풍성함이 아니다.

 

 

나의 기대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나의 기대는 내가 전하는 아버지의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기대는 내 삶이 내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의 간절한 기대는 어제보다 아버지를 더 아는 오늘이 되는 것이다.

 

(1: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공평과 정의를 마음에 가득 담고 살기를,

아버지가 나의 기대를 기대해 충족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

(2022. 07. 2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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