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편 이겨라

2022.06.22 07:47

박상형 조회 수:5

우리편 이겨라(9:1~16)

 

 

1. 이미 이긴 승리

 

모르드개와 유다민족을 죽이려던 하만이 죽임을 당했고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잡았다.

 

 

유다민족을 죽이라던 1차 칙서에 대항하는 2차칙서도 반포되었고

그 칙서가 도착하는 지방에서는 그 날을 축일로 삼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유다사람이 두려워 스스로 유다사람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8:17)

 

승리의 그 날이 아직 오직 않았지만 이미 이긴 승리였다.

 

 

2. 오히려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졌다.

죽음의 날이 오히려 죽이는 날이 되었고

유다가 두려워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으며

모르드개가 두려워 나라의 관리들조차도 유다를 도왔다.

 

(3)모든 지방의 귀족들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관리들이 유다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죽임을 당하는데 왕이 오히려 그 죽임을 부채질 한다.

 

(12)왕이 에스더 왕비에게 말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수산 왕궁에서

500명과 하만의 아들 열 명을 죽여 없앴다니 왕의 나머지

통치 구역에서는 어떻겠소? 이제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오?

내가 들어주겠소. 당신이 무엇을 부탁하겠소? 그것 또한 해 주겠소.”

 

 

적의 편이었던 왕이 이젠 유다편이 되었다.

이짝 저짝 왔다 갔다 하는 왕,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왕을

믿어야 되는 것인지...

 

 

3.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승리

 

이미 이긴 싸움이고 모두들 유다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주동자인 하만과 그 가족들만 죽이고 끝낼 수는 없었을까?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일 수 없어 유다민족 전체를 대상에 넣은 것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데...

죽임을 보고 두고 보자며 이를 가는 사람이 없었을까?

 

 

죽인다고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인다고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유다는 알고 있는 적만 죽였지 숨어있는 적은 죽일 수 없었다.

힘으로 내편 만드는 것은 온전한 승리가 아니다.

 

 

4. 우리 편 이겨라

 

죽이는 것 보다 더 큰 승리가 있다.

숨어 있는 적까지 드러나게 하는 승리가 있다.

그것은 용서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유다는 이미 이긴 승리였다

유다를 죽이라는 1차 조서가 반포되었지만

아직 유다인 한 사람도 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유다는 아무도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승리하셨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혀를 차는 사람은 있었어도 이를 가는 사람은 없었다.

유다의 승리는 뒤 끝 작렬이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뒤끝 하나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기셨는데 교회인 나는 여전히 죽이고 이기려고 한다.

예수님이 알려주시고 보여주셨는데 교회인 나는 여전히

예전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우리 편인 유다가 이기는 장면을 보고 있지만 많이 아쉽다.

우리 편 이겨라 하며 응원할 수 없을 것 같다.

(2022. 06. 22.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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