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으로 사는 길

2022.03.27 08:14

박상형 조회 수:9

알곡으로 사는 길(23:44~56)

 

 

1. 번개라도 좀 사용하시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하늘이 어두워지는 등

몇 가지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걸 본 백부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의인으로 인정한다.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그런데 기적을 보여 주실 거면

예수님에게 있지도 없는 죄를 물어 죽게 한 그 사람들에게

번개를 내리치셔서 몇 명 정도를 불태워버리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일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 의로운 요셉

 

예수가 돌아가시자 공회의원이지만 그들과 생각이 다른 의로운 요셉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고 장사를 지내준다.

예수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안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성경은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신다.

 

(51)(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이지 없을 때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누가는 그를 좋게 평가해 준다.

 

 

3. 누가 이길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유대인이 이겼다.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믿는 사람이 진다.

 

유대인과 예수가 싸웠는데 예수가 졌다.

왜 그럴까?

 

 

복음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겨를 벗겨내고 알곡이 되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

환난은 복음을 알곡으로 만든다

 

 

환난의 어원은 겨를 분리하고 알곡을 만드는

고대의 탈곡기인 뜰립시스(헬라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모든 곡식이 다 알곡이 아니라

고난을 거치면서 쭉정이나 잡것 등이 분리되고

겨가 벗겨져야 알곡이 된다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성도는 알곡이 된다.

그러니 성도가 믿지 않는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싸움에 이겨서는 알곡이 될 수 없다.

의인 요셉이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설명이 된다.

 

 

4. 지는 싸움

 

예수님도 마귀에게 지셨다. 지셨지만 말씀을 다 이루셨다.

진다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의 싸움은 이기는 싸움이지만 성도의 싸움은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마귀에게 져도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이루면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진 것이 아니라 져 보인 것처럼

내가 말씀대로 산다면 지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쭉정이를 골라내고, 말씀으로 잡것들을 분별하고

말씀으로 겨를 분리해내는 알곡으로 살고 싶다.

 

 

그 과정이 고난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말씀을 먹으며 말씀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다.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힘든 아내 먹이 물어다 줘야 하는데

오늘 아침 용인서 동해로 가야하는 발걸음이 꽤 무거울 것 같다.

(2022. 03. 2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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