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하고 불량한 지식

2021.12.12 08:07

박상형 조회 수:1

알량하고 불량한 지식(33:1~13)

 

 

엘리후의 말이 똑소리 난다.

또 할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직설적이며

논리적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당차 보인다.

그런데 왜 불량해 보이는 것일까?

 

 

1. 피해의식

 

엘리후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했다.

 

(1)욥 어른은 부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후가 말도 하기 전에 자신의 말에 귀를 귀울여 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적은 사람의 말이었기에 건방지다는 말을 듣게 될까 그랬을까?

아니면 나이 적은 사람들은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무시당한다는

꼰데 문화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었기 때문일까?

 

(6)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른이나 나나 똑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7)그러므로 어른께서는 나를 두려워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내게 압도되어서 기를 펴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엘리후가 처음에 말을 꺼낼 때부터 나이의 연소함을 들고 나온 것과

욥에게 말을 하기도 전인데 자신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설레발이 요란스러운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또 실제로 당시 문화가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엘리후는 욥의 말에 대해 반박할 요량으로 나온 것이므로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욥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다.

 

2. 불량한 엘리후와 내 눈

 

엘리후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욥의 말을 문제 삼았다.

 

(13)그런데 어찌하여 어른께서는, 하나님께 불평을 하면서 대드시는 겁니까?

어른께서 하시는 모든 불평에 일일이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께 원망을 할 수 있습니까?

 

 

왜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대드냐는 엘리후의 말은

욥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욥을 정죄하기 위해서였다.

 

 

욥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욥이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을 만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욥의 말이 하나님께 조금 건방져 보였더라도 욥을 이해하는 쪽에 서서

생각해 봤을 텐데

엘리후는 욥이 당한 고난의 원인에 대한 동의 없이 욥의 현재의 모습만 보고

욥의 입술을 후려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엘리후의 말로 인해 욥의 마음이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욥의 잠간을 보고서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엘리후의 모습이

당차보이기 보다는 상당히 불량해 보이니 내 눈도 참...

 

 

3. 지식불량

 

하나님은 어떤 사람보다 크다고 한다. 맞다

어떤 사람보다 크니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사람보다 큰 분이니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시고

그 어떤 말도 이해해 주실 수 있는 것 아닐까?

 

(12)그러나 내가 욥 어른께 감히 말합니다. 어른은 잘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보다도 크십니다.

 

 

엘리후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질이 불량하고 저질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안 되는 크신 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계시기에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의 진실을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에게는 모범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토하는 사람을 마음에 두신다.

 

 

알량하고 불량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지 않기를,

입은 좀 불량해도 마음은 하나님 앞에 진실이기를 소망하며

말씀을 만져보고 있다.

(2021. 12. 12.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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