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운

2021.11.18 16:08

박상형 조회 수:4

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운(욥27:13~23)

 

 

욥이 악인이 받을 기업에 대해 말한다.

 

(13)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정하신 몫, 억압자들이 전능하신 분께 

받을 기업은 이것이네.

 

 

그런데 욥은 악인이 받을 기업은 무엇인지 말하면서

악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악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그가 받을 기업이 더 확실해 지는 것 아닐까?

 

 

악인은 어떤 사람이며

악인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1. 세상에는 기준이 없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악한 세상이 악인의 기준을 정할 수는 없다.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 나무라는 겪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사람의 눈일 뿐 하나님의 시선은 아닌 것 같다.

인권을 유린당하는 북한과 아프카니스탄 같은 나라를 

그냥 내버려 두시고

순교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보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2. 세상의 기준은 없다

 

세상은 자기가 중심이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생각에 맞으면 합의 하지만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데모를 한다.

 

 

욥도 자기가 당한 고난이 자기의 생각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욥은 자기 생각과 한참이나 달랐지만

그래서 불만도 있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자기 생각에 조금만 맞지 않아도

행동으로 표시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졌다.

자기주장을 잘 표현하는 것이기라 생각이 되지만

사람들 마음에는 믿지 못하는 마음이 깔려있는 것 같다.

 

 

3. 나의 기준

 

악인에 대한 나의 기준은 없다. 모른다.

아침에 옆부서 동료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내 정치성향을 궁금해 하며 물어왔다.

 

 

나는 세상의 성향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낀 개낀 이라는 것이다.

 

 

누구를 선택하면 십년을 후퇴하고

누구를 선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나라가 십년이 후퇴되는 것은 신경쓰면서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후퇴되는 것은?

 

 

망하지도 않은 나라가 망한다고 하며 가슴을 치지만

교회안에 있는 하나님나라가 망가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않는 것은 왜 일까?

 

 

4. 하나님의 기준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교인이 아니라 말씀이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품고 있는 사람

세상보다 위에 있기에 세상이 어쩔 수 없고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말씀말이다.

아마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도 말씀이 아닐까 싶다.

구원에 대한 기준이 예수인 것 처럼...

 

 

그래서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받은 관심은 포기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관심인 말씀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22)하나님께서 그를 아끼지 않으시고 던져 버리시리니 

그 손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편을 갈라서 서로 미워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모아 서로 사랑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말씀이 그리할 수있지 않을까?

 

 

나는 말씀을 모르는 교인이 되고 싶지 않다. 

오늘 아침 먹은 말씀이 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2021. 11. 18.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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